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호(朴東浩)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10403

공훈사항

박동호 순경은 1932년 4월 3일 충북 괴산군 칠성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충북도경 괴산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괴산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하자 치안국은 전시 비상경비총사령부 체제로 전환했다.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7월 8일 충주 지구에서는 국군 제2연대와 충주 경찰병력 158명이 북한군 제1사단과 제12사단의 협공을 받았다. 당시 경찰부대는 3개 소대로 편성하여 남한강 제방의 적 예상 도선장과 탄금대 일대의 요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우세한 포병 화력의 지원을 받는 북한군은 9일 아침 남한강 상류에서 도하를 감행하여 아군 방어선을 후방에서 위협하였고, 군경부대는 수안보 지역으로 철수했다.
개전 이후 전선이 계속 남쪽으로 이동하고 국군과 경찰이 계속 후퇴하면서 괴산경찰병력도 7월 초부터 축차적으로 남으로 이동했다. 괴산경찰은 국군의 지연전과 병행하여 문경-상주-구미-왜관-칠곡까지 이동하는 동안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피난민 이동 통제 및 구호, 주보급로 경비 임무를 수행했다. 괴산경찰병력은 7월 30일 칠곡에 도착했다.
7월 31일 비상경비사령부는 경남 서부지역 거창에서 고령으로 철수한 충남·서울 경찰병력으로 고령지구 전투사령부를 편성했고, 성주와 고령에 있던 경찰부대는 미 제8군의 낙동강방어선 편성계획에 따라 낙동강 내선으로 철수했다. 칠곡 지역에서 괴산경찰병력은 주보급로 경비, 고령 일대에서 낙동강 방어선 방어,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국군과 유엔군이 9월 16일 총반격작전을 개시하자 각 도(道) 경찰국은 관할지역 경찰관서를 수복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 9월 20일 칠곡을 출발한 괴산경찰은 9월 28일 괴산경찰서를 수복했다. 이후 괴산경찰은 월악산과 속리산 일대에서 준동하는 공비 토벌작전을 수행했다. 1951년 4월 3일 박 순경은 월악산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하던 중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호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5-ㅂ-037호)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