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호(朴東湖)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901

공훈사항

박동호 경사는 1925년 9월 24일 전북 장수군 장수읍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북도경 장수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함안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장수경찰은 주요 시설 경비와 장수-진안, 장수무-무주, 장수-함양을 잇는 주요 도로 통제,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군은 1950년 7월 18일 강경을, 7월 20일 곡성을 점령한 후 일부 부대는 김제로, 일부는 전주로 남진함에 따라 전북도경은 7월 20일 남원으로 철수했다. 7월 20일 전주가 적의 수중에 들어가자 남원에 집결한 전북도경과 전북 북부지역 경찰은 임실 방면에서 남하하는 북한군에 대비하기 위해 육군부대와 합동 방어태세를 갖추고, 남원시 운봉에 진출한 함양경찰 병력과 합세하여 육십령 고개에 차단진지를 구축했다.
7월 27일 북한군 제4사단의 선두 부대가 육십령에 배치된 아군 경찰부대를 공격하였고, 경찰은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인하여 장수와 함양 방면으로 철수했다. 7월 31일 진주가 함락되자 군경부대는 마산으로 진격하는 북한군 제6사단에 대비하기 위해 경남·전남·전북의 경찰병력 4,000명으로 전투편성을 한 다음, 지휘소를 함안군 군북면에 두고 미 제25사단, 한국 해병대와 합동으로 적과 대치하게 되었다. 통영 원문고개에서 방어에 임하고 있던 경남경찰이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인해 8월 14일 통영을 거쳐 거제도로 철수하게 되자 마산과 부산이 적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8월 하순이 되자 경찰부대는 적의 최종공세에 대비하여 진동리지구에 경남경찰, 전남경찰을 배치하고, 함안지구에는 전북경찰을 배치하여 미 제25사단의 방어진을 보강했다. 또한 의령 방면에서 침공하는 적 제7사단에 대비하여 전북경찰 1개 대대를 함안군 법수면에 배치하고, 미산령과 전투산에는 전북경찰 독립대대와 전남경찰 2개 중대를 배치했다.
북한군이 9월 1일 마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함안군 법수면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방어작전을 수행하던 박 경사는 적의 공격을 맞아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호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해(50판-6면-04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7-ㅂ-02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