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하(朴東夏)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239199
  • 전몰일자 : 19520622

공훈사항

박동하 하사는 1930년 9월 10일 경상북도 금릉군 동해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8월 10일 육군에 입대하여 간단한 기초군사 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26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동하 하사는 향로봉 지구전투에 투입되었다. 박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1년 8월 18일 북한군이 점령한 924고지(서화리 동북 및 향로봉 서북 7㎞)를 공격하여 고지 8부 능선 일대에서 적진으로 돌입해 고지를 점령했으나 20일 북한군의 역습으로 탈취당하였고 이후 25일 또다시 역습해 끝내 고지를 장악하였다.
1952년 3월 17일 화천으로 이동해 금성천 북안의 미주리 선에 배치되었다. 이후 4월 5일부로 제2군단으로 배속되어 동부전선을 방어 중이었다. 4월 20일 진지 전방으로 정찰활동을 수행하던 그는 북한군과의 교전에서 중공군을 여러 명 사살하는 수훈을 세웠다. 박 하사와 연대병력은 1952년 6월 16일 전투지경선 조정에 따라 교암산 동측 765고지-690고지-663고지-북한강 동안 어운리 선을 주저항선으로, 575고지, 지형능선(690고지에서 동북쪽으로 뻗은 1Km의 능선), 수도고지(663고지 북 500m, 610고지)등에 전초를 운용 중이었다. 이때 사단은 여호고개-여문리를 경계로 좌전방에 1연대, 우전방에 제26연대를 배치하고 제1기갑연대를 예비로 확보하여 방어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을 수차례 반복하였으며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전투가 반복되면서 북한군과 아군의 시체가 쌓여갔다. 시체가 부패하면서 전투 현장에는 발을 디딜 곳이 없을 정도였다.
박 하사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투에 임하였다. 위기에 처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으나 북한군의 포화에 의한 극심한 피해와 병력의 열세로 수도고지가 북한군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박동하 하사는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고 1952년 6월 22일 꽃다운 청춘을 남겨둔 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하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07435 육)을 추서하고 위패(23판-11면-687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6-ㄱ-01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