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하(朴東夏)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9500328
  • 전몰일자 : 19520627

공훈사항

박동하 이등중사는 충청북도 영동군 양강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중공군의 총공세와 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중부 전선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2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후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동하 이등중사가 전선에 투입될 당시 상황은 예기치 못하였던 중공군의 개입과 공세로 인해 평택-삼척을 연하는 37도선까지 철수하였던 국군과 유엔군이 다시 38도선까지 진격해 대치 중이었다. 중공군은 또 한 차례 서울을 점령하기 위해 1951년 4월 22일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였다.
박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파평산에서 중공군의 집요한 공격을 지연시켰다. 그를 비롯한 장병들의 투철한 전투 의지에 따라 중공군은 서울점령을 포기하고 주력을 동부전선으로 전환하였다. 1951년 5월 16일 중공군이 강원도 인제군 현리에서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였지만 서부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따라서 박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임진강 일대에서 소규모 매복전투, 상대방의 첩보 및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적진정찰 등의 작전을 계속하였으며 포로획득을 위한 작전 또한 계속되었다. 대규모 작전보다도 더욱 치열하고 정교한 작전이었다.
1951년 12월 28일-1952년 1월 8일간에 문산 정면의 임진강 북쪽 두매리 부근에서 사단과 중공군 간에 전초진지 쟁탈전이 벌어졌다. 박동하 이등중사와 연대는 주저항선을 임진강 북안의 사천-백학산-사미천을 연하는 선으로 추진하여 북한군과 대치하였고, 달려드는 북한군을 상대로 수류탄과 백병전으로 혼신의 혈전을 벌인 끝에 이를 격퇴하였다.
박 이등중사가 배치된 임진강 일대에서의 전선은 장마로 인하여 6월까지 비교적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쌍방은 교착된 전선에서 전투보다는 진지 강화와 부대정비에 전력하였으며, 전초와 엄호부대 사이의 빈번한 탐색전과 소규모 전초진지 전투를 통하여 상호 접촉을 유지하였다. 박동하 이등중사는 장병들과 야간정찰 도중 북한군과 조우하여 소총 사격을 가하며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던 중 적의 총탄을 맞고 1952년 6월 27일 고양대 부근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하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4-ㅍ-05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