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필(박동필)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305175
  • 전몰일자 : 19510520

공훈사항

박동필 하사는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박 하사는 1950년 9월 5일 제3교육대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9월 14일까지 낙동강방어선의 흥해, 포항, 형산강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뺏고 뺏기는 공방전 끝에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총반격태세로 들어갔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사단은 23일부터 추격작전을 전개했다. 연대는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박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동해가도를 따라 진격하여 10월 10일 원산을, 25일 백암을 각각 확보하고, 계속 북진을 하는 중에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북한군 제2사단의 집중공격에 진지가 돌파당하면서 1951년 1월 2일 평창으로 철수했다. 이후 연대는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영월 탈환전에 참가했고,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는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연대는 2월의 킬러작전, 3월의 리퍼작전 때 인제군 봉화산, 하진부리 일대에서 격전을 치렀다.
국군과 유엔군은 4월 초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연대는 4월 중순 인제군 한계리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했다.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 때 연대는 인제의 가리봉, 한석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과 치열한 격전 끝에 결국 주 방어선인 가리봉을 지켜냈다.
5월 16일 중공군 제5차 공세(5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사단의 유일한 보급로 상의 오미재 고개가 차단당한 가운데 북한군 제5군단의 공격을 받자 장병들은 장비를 파괴하고 방태산을 넘어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박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용감하게 앞장서서 적의 포위망을 돌파하다 적탄에 맞아 5월 20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필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11면-6870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3-ㄴ-04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