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필(박동필)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5102917
  • 전몰일자 : 19510419

공훈사항

박동필 이등중사는 전라북도 정읍시 상평동 100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박 이등중사는 1950년 5월경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이른 새벽 38도선을 지나 기습남침을 감행하였다. 당시 제8사단은 방어와 동시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역습을 시도해 적에게 피해를 줬으나 적의 병력과 화력이 우세해 강릉을 상실하고 낙동강 지역까지 지연전을 펼쳤다. 박 이등중사가 속한 제8사단은 1950년 9월 낙동강 전선에서 반격을 개시하여 10월에는 38도선을 돌파하여 북진하였다. 예기치 않게 10월 말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진을 제지당하고 다시금 지연전을 펼치게 되었다.
제8사단은 1950년 12월 1일 제2군단의 집결지인 평양 동쪽의 상동에서 38도선을 향하여 철수를 거듭하여 율리에서 수안을 거쳐 신계, 시변리를 경유해 토산에 이르렀다. 이어서 제8사단은 38도선의 바로 북방에 위치한 520고지의 점령을 위해 연천에 집결해 520고지를 향하여 돌진했다. 하지만 중공군에 비해 열세한 화력과 적군의 우회 침입 작전에 직면하여 위기에 놓였으나 필사적으로 포위를 뚫고 철수했다.
철수를 완료한 제8사단은 1950년 12월 31일부터 강원도 화천군 내평리에서 적군을 대적했으며, 정면으로 중공군 3개 사단이 진격해 왔다. 장병들은 진지 구축도 불가능한 혹한에서 지뢰와 장애물을 설치하며 적에 대한 지연전을 실시했다. 이후 전력을 가다듬어 2월 5일부터 국군 제5사단과 함께 홍천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지만 중공군 제198사단의 저항에 봉착하여 전선돌파에 실패했고, 특히 제8사단의 피해가 컸다.
결국 제8사단은 아군의 증원을 기다리며 방어했지만 아군 전선에 대대적인 포격이 가해져 모든 연대가 포위상태에 들어가 제8사단 일부만 주포리로 지휘소를 옮기며 철수했다.
철수를 완료한 제8사단은 부대 정비 후 1951년 4월 공비토벌작전에 참여했다. 아군은 금산지구 일대의 적을 포착하고 섬멸하기 위해 공격을 시작해 581고지와 700고지를 점령했으며 수색을 통해 잔적을 색출해냄으로써 큰 전과를 세우고 금산지구 공비 토벌전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박 이등중사는 1951년 4월 19일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필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0-ㅋ-01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