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팔(朴東八)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03021
  • 전몰일자 : 19511213

공훈사항

박동팔 일병은 1030년 9월 11일 경상북도 경산군 안심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박 일병은 1950년 9월 18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공병대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제7사단은 영천전투에서 적 제15사단의 공격을 물리치고 추격 준비를 하던 상황이었다. 사단은 추격작전 때 제2군단에 배속되어 10월 8일 38도선을 돌파한 후, 김화-평강-곡산-평양 북방-개천으로 진격했다. 사단은 11월 초순 평안남도 개천 동북방의 비호산전투에서 중공군을 물리치고 승리한 후,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공세계획에 따라 11월 22일 묘향산을 공격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2차 공세에 밀려 순천-승호리-신계-시변리-연천-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12월 15일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 때 사단은 영월 일대까지 철수했고,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맞아 1951년 2월 17~18일 치열한 전투 끝에 영월을 지켜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과 리퍼작전(3. 7.~3. 31.) 때 사단은 3월 12일 하진부리를 점령했다. 사단은 4월 중순 인제 서쪽의 관대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 4월 공세(4. 22.~30.)에 밀려 인제 서남방 소양강 변의 정자리 일대까지 후퇴했다. 중공군 5월 공세 때 사단 장병들은 압도적인 적의 공격에 밀려 5월 18일에는 풍암리까지 후퇴했다.
북한군의 5월 공세를 저지한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했다. 이때 사단은 6월 7일부터 12일까지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 끝에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사단은 8월과 9월 동안 양구 북쪽 백석산 남쪽의 917고지, 883고지, 892고지 전투에 투입되어 격전 끝에 이들 고지를 확보했다.
사단은 미 제2사단의 단장의 능선 탈취에 유리한 여건을 만들기 위해 9월 24일 백석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으나, 북한군 제32사단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끝내 고지 탈취에 실패했다. 이 전투에서 박 일병은 앞장서서 적 장애물지대를 개척하다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2월 13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팔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1판-2면-17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3-ㅌ-08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