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춘(朴東春)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5303360
  • 전몰일자 : 19520607

공훈사항

박동춘 일등중사는 전라남도 승주군 별남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정치·사회적으로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5월 1일, 전남 광산의 제20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에 배치되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적인 침략을 하자, 제20연대는 육본명령에 의거 6월 26일 오후에 전남 송정리를 출발하여 밤늦게 미아리 방어선에 도착하였으나, 전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6월 28일에 한강 이남으로 철수했다. 이후 제20연대는 7월 5일 제5사단이 해체될 때에 제2사단으로 예속되었다가 7월 24일 제2사단이 해체될 때 제1사단으로 예속되어 낙동강방어선의 수암산과 유학선, 다부동에서 전투했다.
이후 제20연대는 9월 25일에 경남 삼랑진의 육군 제6훈련소를 모태로 재창설되었다. 당시 박동춘 일등중사는 제20연대 창설 요원으로 전속되었고, 연대는 제11사단에 예속되어 10월 초순에 광주지역으로 이동하여 지리산 서남쪽 지역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했다. 이후 1951년으로 접어들면서 회문산과 백아산 일대에서 대대적으로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여 완전히 격멸했다.
제11사단은 4월 6일 호남지역 공비소탕임무를 제8사단에 인계하고,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했다.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공산군 4월 공세와 5월 16일부터 시작된 공산군의 5월 공세을 맞아 대관령-강릉 선에서 적의 진출을 저지했다. 이어 5월 22일부터 강릉-양양-건봉산 방향으로 반격하여 6월 10일에 건봉산-향로봉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후 제20연대는 수도사단이 방어하던 월비산(459고지)을 11월 17일에 인수했으나, 북한군 제9사단이 바로 다음 날인 11월 18일에 공격했다. 연대는 11월 24일까지 수차례 공방전을 펼쳤으나, 결국은 월비산을 방어하는 데 실패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쌍방은 방어진지 보강에 힘썼다.
박동춘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20연대는 1952년 4월 15일에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이동하여 경비임무를 수행했다. 이곳에서 반공 포로와 친공 포로 간에 유혈사태가 자주 발생했고, 특히 5월 7일에 포로수용소장인 돗드 장군이 포로들에게 납치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그는 포로들의 폭동사태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6월 7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춘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4판-5면-01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3-ㅌ-08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