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찬(朴東燦)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0400
  • 전몰일자 : 19500713

공훈사항

박동찬 일병은 경상북도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5월 중순, 강원도 원주의 제6사단으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직할부대인 공병대대에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화천-춘천 축선을 담당한 제7연대를 직접지원했다.
제7연대 장병들은 당시 북한군 침략 징후가 농후한 가운데 방어준비에 집중했다. 그들은 방어진지에 2∼3개소의 통나무로 만든 유개호를 마련하고 호(壕)간에는 철조망을 설치하고 그 중간에는 대인지뢰를 매설했다. 또한 방어에 유리한 소양강변과 그 북쪽 춘천 분지를 감제하는 164고지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그는 공병(工兵)으로서 보병들의 장애물 설치를 적극 지원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전면적인 남침을 개시했을 때, 제7연대는 곧바로 주방어지역에 투입되어 장애물 설치와 폭파에 중점을 두고 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군 제2사단은 약 1시간에 걸친 공격준비사격으로 아군 방어진지를 무력화한 다음에 SU-76자주포(당시 전차로 오인)를 앞세우고 쳐들어왔다. 연대 장병들은 대전차 특공조를 구성하여 적 자주포를 파괴했다. 그리고 소양강이라는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적에게 타격을 가함으로써 6월 27일까지 적 부대의 춘천 점령을 저지시켰다.
제7연대는 6월 27일에 전투력의 열세로 북한군의 공격을 더는 버티지 못하고 춘천에서 철수하여 원창고개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6월 30일까지 적의 진출을 저지하다가 다시 횡성을 거쳐 원주로 철수했고, 7월 1일에 육본 명에 의거 충주로 이동하였다가 4일 음성으로 이동하여 이곳에서 진천으로 철수하며 북한군 제15사단의 진출을 7월 9일까지 지연시켰다. 이날 제7연대는 진천 지역을 수도사단에게 인계하고 수안보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원복되었다. 그리고 제6사단은 7월 12일부터 조령과 이화령을 포함한 문경지역 방어에 돌입했다. 박동찬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7연대 장병들과 함께 이화령 지역에 배치되어 방어 작전을 실시하던 중 7월 13일에 북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그는 공병(工兵)으로서 항상 적의 진출을 지연하기 위해 장애물 설치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날도 그는 동료들과 함께 장애물을 폭파하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1판-5면-23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8-ㅋ-04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