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진(朴東晋)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351317
  • 전몰일자 : 19501201

공훈사항

박동진 이등중사는 경상남도 울산군 울산읍(現 울산광역시 중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으로 후퇴를 하면서 지연전을 시행하던, 1950년 7월 중순경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제7교육대에서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7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동진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17연대는 1950년 8월 초순에 포항지구전투사령부 소속으로 기계-안강 지역에 투입되었다. 이곳에서 8월 9일부터 북한군 제12사단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사력을 다해 낙동강 방어선을 저지하고 있었다.
경상북도 경주 일대 기계-안강지역이 돌파당하면 지형 상 북한군이 바로 경주-부산으로 진격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북한군의 진출을 저지해야 했다. 연대는 9월 13일에 곤계봉을 탈취함으로써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했다.
이후 박동진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인천상륙작전부대로 선발되어 9월 15일에 부산항을 출발한 후, 9월 18일에 인천으로 美 제1해병사단에 후속하여 상륙했다. 제17연대는 美 제7사단에 배속되어 열차로 영등포까지 이동한 후 하차하여 신사리까지 기동했다. 이곳에서 연대는 9월 25일 오후 2시에 서빙고로 한강을 도하하여 서울의 동쪽 지역을 탈취했다.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38도선을 돌파하여 북진작전을 감행할 때, 제17연대는 서울에 남아 대통령실 및 정부 청사를 경계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얼마 후 연대는 국군 제2사단이 재창설될 때에 그 예하부대로 편성되었다. 당시 제2사단은 포천-철원-평강 일대에서 유엔군의 병참선을 차단하는 등 후방 교란활동을 실시하던 북한군 패잔병을 소탕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군 패잔병들은 단순한 공비들이 아니라 지휘체계를 갖춘 조직적인 부대였다. 박동진 이등중사는 10월 24일에 후방을 교란하는 북한군 패잔병을 격멸하기 위하여 출동했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서울에 위치한 수도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는 이 병원에서 정성스럽게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12월 1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진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1판-3면-16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4-ㄱ-025)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