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진(朴東珍)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19209
  • 전몰일자 : 19520911

공훈사항

박동진 이등중사는 1930년 3월 19일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6월 1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후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동진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554고지-고황봉-36고지-강정을 연하는 선을 방어하고 있었다. 박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951년 10월 10일에 사단 포병과 군단을 지원하는 미 제196포병대대 1개 포대의 지원과 동해안으로부터 함포지원을 받아 가경지 고개-명호리 선으로부터 돌진하여 351고지(월비산 동쪽 2km)-148고지(고성 동남쪽 3.5km) 선을 탈취하고 월비산 공격준비에 들어갔다.
박 이등중사와 장병들은 10월 13일 폭우와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재공격을 감행하여 월비산 8부 능선까지 진출하였다. 고전 끝에 월비산의 적진에 접근한 다음 일제히 돌격을 개시하자 일각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박 이등중사와 장병들은 17일에 다시 고봉리-146고지 선을 점령하고 19일에 공격을 재개하여 201고지-적벽산까지 확보하여 남강 남쪽의 북한군을 모두 구축하였다. 그와 연대병력은 남강까지 진출한 후 11월 16-17일에 방어지역을 제11사단에 인계하고 후방지역 공비토벌을 위해 호남지방으로 이동하였다.
박동진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952년 5월 화천일대 금성천 북안 일대에서 정찰활동을 수행하다 북한군과 마주치게 되어 순간적으로 서로 총알이 빗발치듯 오가는 교전에서 중공군의 여러 명을 사살하였다. 박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7월과 8월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서 각각 한 차례씩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전개되었으며 그 뒤 전선은 8월 중순에 접어들어 다시 교착상태로 들어가게 되었다. 9월 6일 북한군은 지형능선과 575고지에 맹렬한 공격준비사격과 더불어 각각 1개 중대 병력으로 공격을 개시하여 왔다. 지형능선상의 전초소대는 오후 9시경 수명의 생존자만이 철수하면서 능선을 북한군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두려워하지 않고 전투에 임했던 박동진 이등중사는 1952년 9월 11일 금성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이 투척한 포탄에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진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6-ㅎ-04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