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진(朴東鎭)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709

공훈사항

박동진 순경은 1928년 9월 10일 서울시 동대문구 답십리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강원도경 울진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포항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적의 침공에 따라 강원도 최남단의 울진경찰은 서장 박규철 경감이 전 서원을 1개 중대로 편성하여 지상과 해상으로부터 적의 침공에 대비했다. 6월 25일 동해안 삼척지구에 해상으로 침투한 북한군 제766유격부대는 강릉지구의 군경부대가 철수하자 6월 29일 죽변에 상륙했다. 이 중 2개 중대가 6월 30일 울진 전방에 진출하였으며, 경찰부대는 지연전을 펼치며 적의 전진을 저지했다. 적은 그들의 후속부대를 기다리느라 경찰진지를 돌파하지 않았다.
7월 1일 새벽에 적의 대대병력이 기습적으로 3개 방면에서 울진을 공격하자 경찰은 병력을 분산하여 남쪽의 매화지서로 후퇴했다. 이날 육군 제23연대의 1개 대대병력이 울진에 증원되어 적과 공방전을 펼쳤으나 북한군 제5사단 주력부대의 증원으로 인하여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7월 2일 군경부대는 매화지서 뒷산과 백옥산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적의 공격을 저지하려 하였으나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7월 3일 오후 2시에 온정지서에 배치된 군경부대는 남진하는 적 대대병력을 공격하여 6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하여 평해로 철수했다. 7월 4일 군경부대는 평해와 남대천 제방에서 지연전을 펼쳤으나 적 2개 연대가 양측에서 협공을 하자 후방이 차단됐다. 또한 아군 정면의 방어선이 적의 집중적인 포격으로 인하여 붕괴되자 군경부대는 영해로 철수했다. 영해에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적의 남진을 저지하려 했던 군경부대는 압도적인 적의 병력과 화력에 의해 또다시 지연전을 펼치며 후방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7월 9일 지연전을 펼치며 포항 방면으로 후퇴하던 군경부대는 적 1개 연대의 공격을 받고 피·아 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박 순경은 적을 격퇴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진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경찰 2묘역-508판-839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5-ㅅ-01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