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진(朴東鎭)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709

공훈사항

박동진 경사는 1929년 9월 19일 경북 울진군 울진읍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경북도경 울진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평해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토벌작전은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49.12.16-1950.2.28)로 시행했으며, 박 경사가 소속된 경북경찰은 제2단계 기간에 참여하여 대대적인 포위 및 수색작전으로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울진경찰은 북한군의 침공에 따라 전 서원을 1개 중대로 편성하여 지상과 해상으로부터의 공격에 대비했다. 동해안 삼척지구에 해상으로 침투한 북한군 제766유격부대는 강릉지구의 군경부대가 철수하자 일부 병력은 다시 해상으로 기동하여 6월 29일 죽변에 대대병력을 상륙시켰다. 이들 선봉 2개 중대가 30일 울진 전방에 진출하였으며, 경찰전초는 적을 맞아 지연전을 펼치며 적의 전진을 저지했다.
7월 1일 새벽 북한군 대대병력이 기습적으로 3개 방면에서 울진으로 공격하자 경찰은 병력을 분산하여 남쪽의 매화지서로 후퇴했다. 7월 2일 군경부대는 매화지서 뒷산과 백옥산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7월 3일 온정지서에 배치된 군경부대는 적 대대병력을 공격하여 6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한 후 평해로 철수했다.
7월 4일 군경부대는 평해의 남대천 제방에서 지연전을 전개했으나 북한군 2개 연대가 양측에서 협공하여 아군 후방을 차단하는 한편, 정면의 방어선이 적의 집중포화로 인하여 붕괴되어 영해로 철수했다.
울진경찰이 군부대와 함께 영해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적의 공격에 대비하던 중 7월 7일부터 제766유격부대가 영해에 출현하여 유격활동을 전개하며 방어선을 교란함으로써 피·아 간 교전이 벌어졌다. 7월 9일 새벽 적이 아군 방어선 돌파를 시도하자 박 경사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적을 격퇴하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진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6-ㄲ-01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