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준(朴東俊)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K1121594
  • 전몰일자 : 19521226

공훈사항

박동준 이등중사는 1924년 10월 12일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 공세를 격퇴하던 1950년 9월 3일 육군에 입대하여 미 지상군지원 한국군(KATUSA)으로 차출되어 근무하다가 국군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동준 이등중사는 전선에 투입되어 다부동-군위 일대에서 대구를 방어하였다. 박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작전에 기여하고 9월 말 38도선에 도달하였다. 이후 10월 9일에는 38도선을 돌파해 19일 평양에 선두로 입성하는 수훈을 세웠다.
1951년 12월 28일-1952년 1월 8일간에 문산 정면의 임진강 북쪽 두매리 부근에서 사단과 중공군 간에 전초진지 쟁탈전이 벌어졌다. 박동준 이등중사와 연대 장병은 임진강 북안의 사천-백학산-사미천을 연하는 선에서 북한군과 대치하였고, 달려드는 북한군을 상대로 수류탄과 백병전으로 혼신의 혈전을 벌인 끝에 이를 격퇴하였다.
박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952년 10월 1일 임진강 동서안, 역곡천 남안을 연한 주 저항선을 방어하게 되었다. 연대는 10월 8일 닉키 고지에 대하여 공격을 재개하였다. 포병․ 전차․ 항공의 지원하에 니키 고지를 재차 공격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11월에 접어들어 사단은 포로획득과 북한군 전초기지 파괴 작전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으며, 소노리의 상실로 주 저항선이 북한군에게 위협받고 있었으므로 기필코 이를 탈환하고자 11연대를 작전에 투입하였다. 공격에 앞서 12개 포병대대가 소노리 고지 일대에 포격을 집중하였으며, 유엔 공군기 B-26 6대가 목표지점을 폭격하였다. 이후 12월 11일 소노리 고지에서는 7부 능선상에서 북한군의 집중포화와 수류탄 세례를 받아 공격이 진척되지 않고 있었으나, 대노리 고지를 공격한 중대는 전차 소대의 지원하에 1개 소대를 우회시켜 대노리 고지를 확보하였다.
박 이등중사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언제나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앞장서서 용맹을 발휘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동준 이등중사는 1952년 12월 26일 임진강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준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5-ㅅ-01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