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준(박동준)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380850
  • 전몰일자 : 19530615

공훈사항

박동준 이등중사는 1927년 8월 16일 함경남도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유엔군이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자, 조국통일의 선봉이 되고자 일어섰다. 박 이등중사는 1950년 10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1101야전공병단에 배치되었다.
제1101야전공병단은 낙동강방어선전투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1950년 8월에 창설되어 제1군단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박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유엔군이 반격으로 전환하여 38도선을 넘어 북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제1군단은 북진작전 때 수도사단과 제3사단을 배속받아 9월 16일 반격작전으로, 9월 23일 추격작전으로, 10월 1일 북진작전으로 각각 전환했다.
제3사단은 동해안을 따라 포항-영덕-강릉-양양-고성-통천을 거쳐 10월 10일 원산, 17일 함흥을 각각 점령하고, 계속 북진하여 11월 말에는 길주, 혜산진까지 진출했다. 제1군단은 제3사단을 따라 진격하면서 양양-원산-함흥으로 이동했다. 청진, 혜산진까지 진격한 제1군단은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12월 1일부터 철수하기 시작했다. 제1군단과 제1101야공단은 18일 흥남에서 철수하여 묵호에 상륙했다. 북진작전 간 공병단은 주보급로와 교량 건설·보수를 함으로써 전방의 수도·제3사단과 군단에 대한 보급지원이 가능하게 했다.
군단은 상륙 후 제9사단이 방어 중이던 관대리-현리-서림-양양을 잇는 선의 방어선을 인수하여 동해안 축선 방어에 임했다. 이후 군단은 삼척-양양-간성 일대의 동해안지구 전투(수도사단 및 제11사단)에서 남하하는 공산군을 저지했다. 그리고 휴전 시까지 고성군 월비산전투(수도사단, 제11사단)와 351고지 일대 전투(제5사단, 제11사단, 제15사단) 등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며 실지를 회복하고, 전선을 고성군 거진 이북으로 끌어 올렸다.
야공단은 제1군단에 예속되어 전방 사단 지원과 군단 후방지역작전을 위한 도로 및 교량 보수 임무를 주로 수행하면서, 때로는 후방지역에 침투한 적을 소탕하는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다. 박 이등중사는 위험을 무릅쓰고 앞장서서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군단 작전에 기여했으나, 1953년 6월 15일 속초 부근 교랑 보수작업 중에 적의 습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준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26091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23판-6면-277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7-ㅁ-02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