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주(朴東柱)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2703586
  • 전몰일자 : 19500816

공훈사항

박동주 하사는 1927년 3월 2일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1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박동주 하사는 파평산 철수작전에 투입되었다. 박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0년 6월 26일 파평산 방어진지의 노출된 동측방으로 접근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해 주저항선이 무너졌다. 이후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 제1사단의 주공이 320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진출하면서 문산리를 위협하였다. 이어 29일 북한군의 주력이 전방 주저항선을 돌파하고 문산-의정부 선까지 진출하자 박 하사와 장병들은 봉일천과 창동선에 급편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서울 방어를 위한 최후의 저항을 준비하였다.
박 하사와 연대병력은 7월 8일 음성을 중심으로 외곽방어선을 형성하고 북한군의 행군대열의 절반이 방어정면으로 들어섰을 때 105mm 곡사포의 지원사격하에 각종 화기를 일제히 집중함으로써 적의 남진을 분산시켰다. 북한군 제15사단은 9일 다시 무극리-음성, 신양리-음성 양측방 도로 접근로와 중앙 산간 접근로의 3개 방향에서 공격을 개시하였다. 새벽 무렵 북한군은 음성에 포격을 집중하면서 2개 연대 병력을 각각 8대의 장갑차의 지원 하에 연대정면으로 공격하였으나 박 하사와 연대 장병들의 집중적인 저지사격과 역습에 의해 다시 저지되었다. 그와 장병들은 지연전을 병행하며 7월 말 낙동강까지 철수하였다.
박동주 하사와 연대병력은 8월 12일부터 칠곡군 가산면 일대에서 다부동 전투를 수행하였다. 북한군은 사단이 방어하고 있는 지역에 5개 사단을 집중해 집요한 공세를 계속하고 있었다. 박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유엔 항공기의 지원을 받아 북한군 전차를 파괴하는 등 사격을 가하면서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박 하사는 오직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전투에 임하였다. 생사기로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박동주 하사는 1950년 8월 16일 인동고지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주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11묘역-7판-50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1-ㅍ-01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