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주(朴東柱)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341258
  • 전몰일자 : 19530605

공훈사항

박동주 일병은 전라북도 이리시 갈산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박 일병은 1952년 8월 17일 충청남도 논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과 포병 주특기 교육을 받고 제8사단 제50포병대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휴전회담이 진행되면서 유엔군이 38도선 일대에서 공산군과 대치하고 있었고, 제8사단은 강원 양구 해안면의 서희령 일대에서 북한군과 공방전을 전개 중인 상황이었다. 9월 중순 사단은 북한군 제45사단과 중공군의 파상공격으로 854고지를 탈취 당했으나, 역습을 가하여 동 고지를 탈환했다. 사단은 9월 말 미주리선 방어임무를 미 제45사단에 인계하고, 미 제10군단에서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사단은 10월 19일 미 제9군단으로부터 제2군단으로 다시 배속 전환되어, 10월 25일 중동부전선의 요충지인 수도사단 작전지역인 수도고지·지형능선을 인수하여 전초진지 쟁탈전을 전개했다.
한편 국군은 계속적으로 포병전력을 확장시켜 왔고, 그 일환으로 1952년 11월 15일 제12야전포병단을 창설하여 제8사단을 지원하도록 했다. 이때 박 일병은 동 포병단으로 전속되었다. 포병단은 1953년 1월 20일 보병 3개 연대를 직접지원하는 105mm 곡사포 3개 대대와 사단을 일반지원하는 155mm 곡사포 1개 대대로 확장되어 제12포병단에서 제8사단 포병단으로 개칭되었다.
사단은 1953년 5월 말까지 수도고지·지형능선 진지를 강화하면서 전초진지 쟁탈전을 전개했다. 중공군은 최후 공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침투부대를 침투시켜 아군에 대한 첩보를 수집하는 한편, 사단 후방지역을 교란했다. 박 일병은 1953년 6월 5일 포반원을 이끌고 후방지역에 대한 수색작전을 펼치다 적 침투부대의 습격을 받고 교전 중에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주 일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8217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38판-7면-22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7-ㄹ-07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