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일(박동일)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2801536
  • 전몰일자 : 19510519

공훈사항

박동일 하사는 충청남도 아산군 생포면 요고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 공산세력들의 침투 및 교란 활동으로 사회가 혼란스럽던 1949년 7월 중순, 서울 용산의 제1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동년 11월 15일에 옹진반도로 이동하여 38도선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제17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전투력의 열세로 6월 26일 아침에 인천으로 철수했다. 이후 연대 장병들은 대전에서 육본경비 임무를 수행하다가 오산 북쪽의 갈곶리에 배치되어 방어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수도사단에 배속되어 보은-상주 일대에서 지연전을 수행했고, 8월 중순에 기계-안강 지역에 투입되어 9월 12일까지 북한군과 일진일퇴를 거듭한 끝에 격퇴했다.
박동일 하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육군 중 유일하게 인천상륙작전부대로 선발되어 9월 14일에 부산으로 이동하여 상륙함정에 승선했다. 연대는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9월 18일에 인천으로 후속 상륙한 후에 열차로 영등포까지 이동하였고, 이후 신사리까지 도보로 기동했다. 그리고 9월 25일에 한강을 도하하여 남산을 탈환한 후 서울의 동쪽 지역을 탈취했다. 그리고 11월 7일에 제2사단이 재창설될 때, 연대는 제2사단에 예속되었다. 제2사단은 포천-철원-평강 일대에서 후방지역을 교란하던 북한군 패잔병들을 소탕했다. 한편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북진했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큰 피해를 보고 다시 38도선 일대로 철수할 때인 12월 중순, 제2사단은 양문리-탑두울 지역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제2사단은 1950년 12월 31일에 시작된 중공군의 신정공세로 주저항선이 돌파되어 다음 날에 후방으로 철수했다. 당시 제2사단 장병들은 여주 및 제천을 거쳐 안동지역으로 이동했다. 당시 안동 부근의 일월산-보현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10사단이 교란 및 차단 활동을 하고 있어 대응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박동일 하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1951년 4월 초순까지 북한군 잔적들을 대부분 격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제2사단은 4월 28일부로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청평으로 이동하여 반격작전을 준비했다.
미 제9군단은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성공적으로 격퇴하고 반격했다. 제2사단은 5월 19일부터 시작된 군단의 반격작전에 참가하여 미 제24사단을 엄호했다. 당시 박 하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아군의 진격을 방해하는 적을 격멸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일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11면-686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1-ㅈ-08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