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일(朴同日)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103766
  • 전몰일자 : 19501022

공훈사항

박동일 일병은 전라남도 광양군 진상면에서 출생했다(출생일자 미상). 그는 1950년 1월에 경기도 양주에 주둔한 국군 제1연대로 입대했다. 이후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았을 때, 동부천 북방에서 방어했다. 이후 제7사단은 7월 5일에 평택에서 해체되었고 연대는 수도사단 예하 부대로 편성되었다. 당시 그는 미 제25사단이 7월 하순에 상주 지역에 투입될 때 통역병으로 사단에 전속되었다.
미 제25사단은 7월 하순에 상주 지역에 한국군을 지원하며 북한군의 진출을 저지했다. 이후 8월 2일에 진주를 거쳐 마산으로 공격하는 북한군 제6사단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마산지역으로 신속히 투입되었다. 이후 사단은 킨(Kean) 특수임무부대(제35연대, 제5연대, 미 해병 제5연대)를 편성하여 마산 정면의 북한군을 궤멸시키고 진주 고개-사천 선까지 진출하기로 했다.
킨 특수임무부대는 8월 7일 공격작전을 개시하여 진주 고개까지 진출했으나, 적들이 산악지대에 은폐해 있다가 아군부대에 후방차단 및 기습공격을 가함에 따라 12일에는 진동리-남지 선으로 후퇴했다. 이 전투에서 적들은 큰 피해를 입고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이에 8월 16일에 킨 특수임무부대는 해체되고 9월 중순까지 미 제25사단 장병들은 마산 서부지역 일대에서 방어작전만 수행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전 전선에서 일제히 총반격작전을 개시했다. 사단 정면의 적들은 인천상륙작전으로 그들의 후방이 완전히 차단된 것을 모르고 서북산 등 험준한 산악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9월 18일까지 강력히 저항했으나, 9월 19일 야간부터 적들은 철수하기 시작했다.
이에 제25사단 장병들은 도망가는 북한군을 추격하기 시작하여 9월 25일에는 진주를 탈환하고 함양-남원-전주를 거쳐 9월 29일에 강경을 탈환했다. 이후 강경-논산-이리 일대에서 미처 도망가지 못한 잔적들을 발견하고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이후 박동일 일병이 소속된 대대는 지리산 일대에서 미처 도망가지 못한 북한군 패잔병 무리를 소탕하는 작전에 투입되었다. 대대는 10월 22일에 지리산 일대에서 소대 규모의 패잔병들을 발견하여 격멸했다. 이날 그는 적들을 소탕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일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90-ㅁ-00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