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일(朴同一)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627714
  • 전몰일자 : 19510109

공훈사항

박동일 이병은 1927년 8월 25일에 전라북도 김제군(現 김제시) 황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로 38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7월 초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27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동일 이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휴전회담장이 있는 개성이 포함된 서부전선에서는 충돌을 자제하였으나, 중・동부를 중심으로 한 전선에서는 ‘血戰’을 벌이고 있었다. 제5사단은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선 진격작전을 완료한 후 7월 말까지 재편성과 부대훈련에 전념하고 있었다.
1951년 8월에 접어들면서 美 제10군단은 南으로 만곡부를 이루는 전선을 北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美 제10군단에 배속된 제5사단은 1951년 8월 31일 가칠봉 북쪽의 1,211고지와 서희령을 점령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최초 제27연대를 주력으로 사단목표인 가칠봉 동북쪽 능선과 서희령(西希嶺)을 점령했다. 계속해서 사단은 9월 5일 전 작전지역을 감제 가능한 1,211고지를 목표로 공격하였으나 진전이 없자, 다음날 박동일 이병이 소속된 제27연대가 제35연대 각 대대를 지원받아 9월 9일에 1,211고지를 최초 점령하였으나 적 역습으로 가칠봉으로 철수했다.
사단은 가칠봉 부근의 진지를 강화하다가 9월 17일에 제35연대로 주력을 전환하여 1,211고지를 공격하였으나 실패했다. 지금까지 2개 연대가 교대로 공격을 펼쳤으나 돌파구를 열지 못하자 사단 예비인 제36연대를 투입하기 위해 부대 재배치를 단행하였다. 10월 1일에 사단예비인 제36연대가 전방으로 추진되어 1,211고지를 탈취하고 재편성했으나, 적의 강력한 역습으로 1,211고지의 아군 방어진이 포위되자, 사단은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제27연대가 10월 8일 제35연대 제2대대의 엄호하에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다음날 적의 역습으로 또다시 철수했다. 이와 같은 혼전 속에서 박동일 이병은 10월 9일 분대원과 함께 1,211고지에서 철수 중 적 포탄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일 이병의 공적과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2-ㅎ-01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