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인(朴東寅)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05034
  • 전몰일자 : 19510306

공훈사항

박동인 일병은 1928년 10월 18일 경상남도 울산군 서동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구하고자 분연히 일어섰다. 박 일병은 1950년 9월 5일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공병대대에 배치되었다.
사단은 북한군 9월 공세 때 영천 전투에서 적 제15사단의 공격을 물리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기여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사단은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10월 8일 38도선을 돌파한 후, 김화-평강-곡산-평양 북방-개천으로 진격했다. 사단은 11월 초순 평안남도 개천 동북방의 비호산전투에서 중공군을 물리쳤다. 사단은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공세계획에 따라 11월 22일 묘향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사단은 26일 묘향산 남방에서 중공군 제38·42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악전고투 끝에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사단은 미 제8군 철수계획에 따라 12월 3일 승호리 일대로, 6일 신계를 거쳐 시변리로 철수했고, 계속해서 연천을 거쳐 12월 15일 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했다. 이후 사단은 춘천 부근의 38도선 일대에 진지를 편성하고 방어준비에 매진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사단은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사단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됨에 따라 자은리를 거쳐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북한군 제5군단이 원주 지역에 깊숙한 돌파구를 형성함에 따라 사단은 또다시 철수하여 1951년 1월 8일 영월 북서방에 배치되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사단은 1월 19일 공격을 개시하여 24일 영월을 탈환하고 퇴각하는 적을 섬멸했다.
중공군은 2월 11일 횡성-원주 축선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개시했고, 횡성 일대에 배치되었던 사단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되면서 평창 일대까지 밀려났다. 사단은 2월 21일 공세로 전환하여 평창-창동리 도로를 따라 공격, 3월 6일 평창군 백석산 일대까지 진출했다. 이 공격전에서 박 일병은 가장 선두에서 적의 장애물을 제거하다 3월 2일 적 지뢰가 폭파되어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3월 6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2-ㅊ-00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