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원(朴東元)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09029
  • 전몰일자 : 19521013

공훈사항

박동원 하사는 1926년 12월 3일에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노고산동(現 마포구 대흥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춘계공세로 38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4월 17일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27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동원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당시의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美 제1군단에 배속되어 6월 4일 한계리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격전 끝에 6월 17일 목표인 서화리 일대 고지들을 점령하며 후덕리-981고지-산두곡산을 잇는 新캔자스선을 확보했다. 8월 초순 美 제10군단에 재배속된 사단은 군단 예비로서 강원도 현리 일대에서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하고 있었다.
8월에 접어들면서 미 제10군단은 전선을 북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이때 제5사단은 8월 31일 가칠봉 북쪽의 1,211고지와 서희령을 점령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사단은 10월 14일까지 5,0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북한군 제27, 2, 13사단을 맞이하여 1,211고지를 3번이나 점령했다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 끝에 동 고지를 적에게 내주었으나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냈다. 사단은 10월 20일에 이 전선을 국군 제3사단에 인계하고 육본 직할로 전환되어 강원도 양양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에 집중했다.
그 후 사단은 1952년 1월 13일부로 제1군단에 배속되어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하여 1월 23일부터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고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사단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47, 9사단으로서 월비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그 남쪽의 351고지를 비롯한 사단의 전초진지와 주저항선을 공격하기 위해 7월 초까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적 제9사단은 7월 10일 대규모의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351고지를 집중 공격했다. 적의 기습공격에 사단은 同 고지를 탈취당했으나, 제27, 35연대를 번갈아 투입하며 3일간 치열한 공방전 끝에 이 고지를 탈환했다. 적은 11월까지 수시로 소규모의 병력을 투입하여 이 고지를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박동원 하사는 10월 13일 351고지에서 분대원을 진두지휘하며 중대 규모의 적과 교전 중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원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22109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39묘역-6판-1732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4-ㅇ-09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