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오(박동오)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800647
  • 전몰일자 : 19501122

공훈사항

박동오 일병은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군번과 전사일자 등을 고려할 때,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으로 지연전을 수행하던 1950년 7월 중순에 대구의 육군 제25교육연대로 입대하여 단기간의 기본군사훈련을 수료하고 제17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동오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8월 중순, 제17연대는 낙동강방어선의 기계-안강 지역에 투입되어 북한군 제12사단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다 결국 적들의 최후공세를 성공적으로 격퇴했다. 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때 제17연대는 9월 13일에 부산으로 이동하여 상륙함정에 승선 후 인천으로 이동했고, 9월 18일에 인천으로 후속 상륙 후에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영등포 남쪽으로 기동하여 9월 25일에 신사리에서 한강을 도하하여 서울의 동쪽 지역을 탈취했다. 그리고 9월 28일부로 중앙청 및 서울의 주요시설 경비임무를 해병대로부터 인수했다.
이후 제2사단은 11월 7일부로 국본 일반명령 제103호에 의거 서울에서 재창설되었다. 이때 제17연대와 신편된 제31, 제32연대를 예속시켰다. 이후 사단은 지휘소를 서울에서 가평으로 이동하고, 제17연대는 철원, 제32연대는 의정부, 제31연대는 홍천 일대에서 후방교란 활동을 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당시 박동오 일병은 제2사단 직할 수색대로 전속되어 후방지역작전 간에 수색작전에 집중적으로 투입되었다. 당시 포천, 평강, 구화리 일대에서 병참선 차단 등 후방지역을 교란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들은 중공군 공세에 맞추어 더욱 적극적인 교란활동을 하고 있었다. 당시 적들은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탈환하고 북진작전을 감행할 때에 미처 도망가지 못한 자들로 정규부대처럼 지휘체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박동오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11월 22일에 사단 후방지역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1개 소대 규모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오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11면-686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1-ㅋ-03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