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영(朴東榮)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22839
  • 전몰일자 : 19501025

공훈사항

박동영 일병은 경상북도 상주군 서성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격퇴하던 1950년 9월 10일,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롤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직할부대인 통신대로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통신소대는 제2연대를 직접 지원하고 있었다.
박동영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0월 중순, 제6사단은 38도선을 돌파하여 북진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사단은 10월 4일에 춘천을 탈환하고, 계속 공격하여 10월 6일에 춘천 북방의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이후 사단은 10월 8일에 화천을 점령했고, 이어서 김화-금성-신고산-덕원-마식령-양덕 방향으로 북진하여 10월 19일에 성천(평양 동북방 45km)을 점령했다. 그리고 10월 21일부터 진격 방향을 바꾸어 순천-개천-희천 방향으로 공격했다. 그가 소속된 통신소대는 제2연대와 함께 하며 사단과 연대 간의 통신 유지를 위해 전장을 누비며 동분서주했다.
유엔군은 10월 24일부터 압록강을 향한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펼쳤다. 이때 제2연대는 희천에서 부대정비 시간을 갖은 뒤에 10월 24일에 온정리를 거쳐 압록강 변의 벽동(온정리 서북방 75㎞) 방향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연대는 10월 25일에 온정리에서 벽동 방향으로 진격하던 중 동림산(1165m) 기슭에서 매복 중이던 중공군(제40군)으로부터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후방이 차단되는 등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치열한 전투를 수행했다. 이날 박동영 일병이 소속된 통신소대는 제2연대 본부와 함께 이동하며 사단과의 통신선 유지를 위해 출동 나갔다가 중공군으로부터 습격을 받고 즉각적인 대응을 했으나, 큰 피해를 받았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영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1-ㅋ-05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