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열(朴洞烈)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8818
  • 전몰일자 : 19501020

공훈사항

박동열 일병은 경상남도 울산군 대현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군의 남진에 밀려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박 일병은 1950년 8월 초순 육군중앙훈련소에 입대하여 소총 분해결합 정도의 간단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육군 직할 제25연대에 배치되었다.
연대는 8월 7일 대구에서 재창설되었다. 8월 8일 북한군 제12사단이 기계 북방까지 진출하면서 경주 축선이 위협을 받자, 육군본부는 창설 후 훈련도 제대로 실시하지 못한 제25연대를 제3사단에 배속하여 안강으로 급파했다. 8월 9일 제1대대가 안강 북쪽의 445고지에, 제3대대가 포항 북쪽의 소티재를 각각 점령했다. 8월 12일 북한군 제12사단은 기계 남쪽 445고지 일대에 배치된 제1대대를 집중 공격했다. 박 일병이 소속된 제1대대가 밀려나자 연대는 제3대대를 교체 투입하는 등 온 힘을 다해 저항했지만 계속되는 적의 공격에 전투력이 소진되었다. 결국 제17연대가 투입되어 연대 지역을 담당하게 되었고, 연대는 8월 16일 해체되어 제26연대에 편입되었다.
제26연대는 1950년 8월 10일 대구에서 창설되었고, 곧 포항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되어 기계-안강전투에 투입되었다가 8월 20일 제3사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8월 17일 장사동에서 해상 철수하여 구룡포에 상륙했던 제3사단은 부대 정비 후 8월 20일 전선에 재투입되었다. 이후 연대는 9월 14일까지 기계 남쪽 445고지와, 형산, 운제산 전투에 투입되어 혈전을 거듭한 끝에 적의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으로, 22일부터는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사단은 23일부터 추격작전을 전개했다. 사단은 일일 평균 17.3km의 속도로 진격하여 영덕, 울진, 삼척, 강릉(30일)을 차례로 탈환하고,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연대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동해가도를 따라 양양, 거진, 장전, 통천을 점령하며 진격했고, 10월 10일에는 원산을 점령했다. 이후 연대는 10월 하순까지 미 제10군단의 원산 상륙작전을 보장하기 위해 원산 외곽에서 경계작전을 펼치며 잔적을 소탕했다. 박 일병은 잔적소탕작전에 앞장서다 10월 20일 적의 기습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열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5판-5면-14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3-ㅅ-06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