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식(朴東植)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1804346
  • 전몰일자 : 19510711

공훈사항

박동식 하사는 1927년 2월 10일에 출생했다(출생 장소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매우 혼란스러웠던 1948년 12월 31일, 강원도 춘천의 제8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제6여단이 1949년 청주에서 원주로 이동하여 5월 12일부로 사단으로 승격할 때, 그는 제8연대에서 제6사단 수색대로 전속되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에 전면적인 남침을 했을 때, 제6사단은 춘천-홍천 북방에서 적의 공격을 3일 이상 저지하고, 원주-충주-문경 축선에서 지연전을 실시했다. 이후 8월 1일에 낙동강을 건너 낙동강방어선에서 9월 중순까지 수차례에 걸친 북한군의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반격으로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했다.
제6사단은 12월 31일 야간에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전곡-백의리 선에서 철수하여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로 이동했다. 그리고 2월 초에 문막 북쪽의 판대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중공군의 2월 공세로 다시 위기에 처했으나, 돌파구 확장을 방지함으로써 반격의 여건을 조성했다.
제6사단은 반격으로 북한강까지 진출했고, 3월 22일부터 북배산-수덕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4월 21일에 사창리까지 진출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로 큰 피해를 받고 용문산 일대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사단은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전초진지에서 5일간 사수하면서 격퇴했다. 사단은 5월 20일에 용문산 방어진지에서 계관산-북배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지암리를 확보하고, 5월 28일에 구만리발전소-병풍산을 연하는 선을 확보했다. 계속 6월 5일부터는 백암산에서 화천으로 뻗어 내린 643고지-887고지-992고지-취봉 방향으로 공격하여 6월 10일에 최종목표인 취봉을 탈취했다.
이후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박동식 하사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했다. 그러던 중 수색소대는 7월 11일에 적진에서 적정을 수집하던 중 적 부대에 발견되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식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8216국)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4-ㅎ-02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