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숙(朴東淑)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1503122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박동숙 이등중사는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에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 등을 고려하여 작성했다. 그는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광복을 맞이했으나 정부수립 준비로 혼란스러웠던 1948년 5월 5일에 부산의 제5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에 배치되었다.
이후 제17연대가 1948년 10월 28일에 시흥에서 창설될 때, 박동숙 이등중사는 창설 요원으로 전속되었다. 이후 제17연대는 1949년 6월 20일에 서울 용산으로 이동하였고, 동년 11월 15일에 옹진반도로 이동하여 옹진지구전투사령부로 예속되어 제2연대로부터 은파산 방어 임무를 인수하였다. 은파산 지역은 1949년 7월에 북한군의 선제공격으로 빼앗겼으나, 10월 15일에 제2연대의 반격으로 다시 탈취한 지역이다. 이후 옹진반도는 제17연대와 제18연대가 경비임무를 수행하다가 북한군의 도발이 줄어들자, 1950년 3월 1일부로 제18연대는 철수하고 옹진반도에는 제17연대만 남아 방어하게 되었다.
박동숙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64km의 정면을 담당했는데, 제1대대와 제3대대를 전방에 배치하고, 제2대대를 예비로서 옹진 부근에 집결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북한군(제6사단 14연대와 제3경비여단 투입)은 전면적인 포격과 동시에 공격하여 아군의 전방대대 방어진지를 양익 포위하려 했다.
제17연대 장병들은 이전의 도발과는 차원이 다른 적의 강력한 공격을 받고 적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으나, 전투력의 열세와 지형의 불리한 조건에서 오전 7시가 되자 옹진 정면이 위급하게 되어 예비대를 투입하여 적의 공격을 격퇴하기로 했다. 이후 북한군은 제1대대와 제3대대 간의 전투지경선인 취야-양원, 취야-강령 국도를 향해 공격하여 돌파하였다. 이에 연대 예비대는 반격했으나 격퇴되었고, 아군 방어지역은 오후 1시부터 동서로 분할되었다.
박동숙 이등중사가 소속된 대대는 오후 2시에 연대로부터 강령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가 소속된 대대는 연대와 통신이 끊긴 상황에서 적의 포병 공격은 점점 더 가까워짐을 알 수 있었다. 대대 장병들은 적 공격 첫날인 6월 25일 사곶항으로 철수했다. 그는 철수하는 도중에 추격하는 적을 격퇴하기 위해 전투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숙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6-ㅅ-01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