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수(朴東秀)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387508
  • 전몰일자 : 19510928

공훈사항

박동수 하사는 경상북도 영천군 금호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2월 12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킬러작전(2. 21.~3. 6.)을 전개하여 공세를 취하고 있었고, 제7사단은 연대는 평창군 백석산 일대까지 진출 중인 상황이었다. 제8연대는 유엔군의 리퍼작전(3. 7.~3. 31.) 때 평창군 백적산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3월 12일 하진부리를 점령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다. 이때 연대는 공격을 전개하여 4월 중순 인제 서쪽의 관대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 4월 공세(4. 22.~30.)에 밀려 인제 서남방의 신풍리 일대까지 후퇴했다. 5월 16일 중공군 5월 공세가 시작되었고, 소양강 변의 신풍리 일대에 배치된 연대는 중공군 제79·81사단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연대 장병들은 백병전을 펼치며 결사적으로 적을 저지하려 했으나, 압도적인 적의 공격에 밀려 5월 18일 풍암리까지 후퇴했다.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속사리-하진부리-대관령 일대에서 저지한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6월 7일부터 12일까지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 끝에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7월 10일 최초로 휴전협상이 열렸고, 이후 전투양상은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기 위한 고지전으로 전개되었다. 미 제8군은 전체 방어선 가운데 남으로 만곡부를 이루고 있는 양구 일대의 전선을 밀어 올리도록 미 제10군단에 임무를 부여했다. 이에 따라 연대는 8월 9일 백석산 남쪽의 554고지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적의 강력한 저항을 물리치고 9월 2일 목표를 확보했다. 연대는 공격을 재개하여 18일 백석산의 길목에 있는 917고지를 점령한 후 적의 역습을 격퇴하며 진지를 지켜 냈다.
사단은 미 제2사단의 단장의 능선 탈취에 유리한 여건을 만들기 위해 9월 24일 백석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고, 연대는 백석산 동측의 894고지를 점령했다. 이 전투에서 박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용감하게 앞장서서 진격하다 적탄에 맞아 9월 28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수 하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려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31651 육)을 추서하고, 위패(23판-4면-22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3-ㅂ-06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