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수(朴東洙)

  • 군별 : 해병
  • 계급 : 중사
  • 군번 : 9209701
  • 전몰일자 : 19530418

공훈사항

박동수 중사는 전남 무안군 해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50년 12월 20일 진해 해병대 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 과정을 마친 후 1951년 4월 3일 해병대 제5대대(1952년 10월 1일부터 해병대 제1전투단에 예속)에 배치되었다.
박 중사는 부대에 배치된 후 곧바로 화천지구 전투(1951.4.10.-6.1.)에 투입되었다. 화천지구 전투 후 제5대대는 도솔산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도솔산지구로 기동했다. 도솔산지구는 양구와 인제 사이에 있는 태백산맥 중 가장 험준한 천연적 요새였다. 대대는 6월 4일부터 6월 19일까지 치열한 공방전 끝에 24개 목표를 모두 점령했다. 난공불락의 요새인 도솔산고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자 이승만 대통령은 도솔산의 해병대부대를 방문하여 ‘무적해병’이라는 휘호를 하사했다.
그 후 해병대는 대우산지구 전투(1951.7.8.-7.17.), 924고지(김일성고지)·1,026고지(모택동고지) 전투(1951.8.31.-9.3.), 월산령지구 방어작전(1951.9.5.-1952.3.17.)을 수행했으며, 월산령지구 방어작전 후에는 서부전선인 장단·사천강지구로 기동했다.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던 장단·사천강 지구는 경기도 문산과 파주에 접해 있고 서울과 이어져 있어서 서울의 관문인 개성-문산 축선을 지키는 데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 이 지역 일대에서 적과 아군은 전초진지를 두고 1952년 4월부터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반복되었다.
우기인 7월과 8월은 사천강 수위의 변동이 잦아 작전수행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리하여 적진에 대한 기습공격은 사천강의 수위에 따라 제한적으로만 실시했다. 7·8월 장마철이 지나자 쌍방 간 정찰활동과 기습공격, 포격전이 연일 계속되었다. 해병대 정면의 적은 중공군 제582연대와 제584연대였다. 적은 야간을 이용하여 사천강을 도하한 후 아군의 전초기지에 대한 기습공격을 수시로 감행했다. 피·아 간 치열한 공방전은 이듬해 4월까지 계속되었다.
1953년 4월 18일 제5대대는 39전초진지에 대한 기습작전을 감행했다. 박 중사는 목표를 점령하기 위해 소대를 지휘하여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수 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21묘역-4판-119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2-ㄴ-097)를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