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성(박동성)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287613
  • 전몰일자 : 19530715

공훈사항

박동성 하사는 1927년 11월 27일에 강원도에서 출생했다(세부 출생지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 협상이 지속되면서 고지 쟁탈전이 진행되던 1953년 1월 12일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同 훈련소 조교요원으로 배치되었다. 박동성 하사가 훈련소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1훈련소는 신병교육에 주력하면서 인근에 출몰한 적들의 유격활동에 대응하고 있었다.
한편, 개전 이래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함에 따라 병력 보충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병력 확보와 각 지역 방위 임무를 동시에 해결할 목적으로 1950년 7월 초순 각 도별로 편성관구사령부를 설치하고 신병 확보와 더불어 후방지역작전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그리고 신병교육을 위해 8월 14일 대구에서 육군본부 직할로 제1훈련소가, 부산에는 제2훈련소가 창설되었고, 8월 22일에 경남 구포에 제3훈련소가, 제주도 모슬포에 제5훈련소가 창설되면서 신병을 양성했다.
그런데 대구에 있던 제1훈련소는 1951년 1월 22일에 제주도 모슬포로 이전하여 원래 이곳에 있던 제5훈련소와 통합하면서 3월 14일부로 명칭이 제1훈련소로 통일되었다. 제주도는 제주 4·3사건(1948년 4월 3일 발생) 때 군・경의 토벌작전에서 살아남거나 한라산으로 도피한 적 게릴라 잔당들이 수시로 출몰하여 지서나 관공서 등을 습격, 파괴했다. 당시 상황이 긴급했고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게릴라들이 출몰할 때마다 제주도 주둔 해병대사령부나 제1훈련소 병력이 출동해서 이들을 소탕해 왔다. 박동성 하사는 신병교육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서도 기동타격대로서 게릴라 소탕 작전에 앞장서 왔다.
그러다가 박동성 하사는 중공군의 하계공세가 시작될 무렵인 1953년 5월 초순경 부대 재편성에 의거 제8사단 제10연대로 전속되었다. 중공군은 5월 27일부터 31일까지 강원도 김화 일대 549고지 및 647고지와 지형 능선, 수도고지를 공격했다. 연대는 난초고지전투 후 6월 12일부터 21일까지 수도고지전투에서 적군의 끊임없는 공격에도 690고지를 탈환한 것을 마지막으로 모든 고지를 재탈환했다. 그 후 박동성 하사와 부대원들은 690고지 능선 일대에서 적 1개 대대가 출현하여 철수와 재탈환을 반복하던 중 7월 15일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성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43판-4면-02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7-ㄲ-039)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