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성(朴東成)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13942
  • 전몰일자 : 19510920

공훈사항

박동성 중위는 출생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하자 호국 간성이 되고자 경상남도 동래에 있는 육군보병학교에 보병사관으로 입교하여 소정의 교육을 받고, 1951년 5월 초순경 소위로 임관하여 제5사단 수색대 소대장으로 배치되었다.
박동성 중위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중공군 5월 공세 때 제5사단은 중공군 제12군 및 제27군 예하 3개 사단의 집중 포위공격 속에서도 강원도 홍천 일대 풍암리까지 조직적으로 격전과 철수를 반복하면서 적의 종심기동을 저지했다.
5월 하순 공세로 전환한 美 제10군단은 新캔자스선(화천저수지-해안분지-향로봉-거진)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이에 사단은 군단의 우측 전방 부대로서 6월 4일 한계리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격전 끝에 1951년 6월 17일 목표인 서화리 일대의 고지들을 점령했다. 박동성 중위가 소속된 사단은 원통 북방 서화리 일대의 新캔자스선에서 적과 대치 중에 있다가, 8월 초순 군단 예비로 전환되어 현리 일대에서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 무렵 美 제10군단은 남으로 만곡부를 이루는 전선을 북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강원도 양구 일대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따라 사단은 8월 31일 가칠봉 북쪽의 1,211고지와 서희령을 점령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하여 9월 3일 서희령을 탈취했다. 그 후 사단은 미 제38연대로부터 가칠봉을 인수받아 최초 제27연대를 주력으로 1,211고지를 9월 9일 최초 점령했다. 그러나 사단은 적 반돌격으로 가칠봉으로 철수하여 전투력 복원에 전념했다.
계속해서 10월 1일에 사단 총공격으로 2차 점령 및 철수, 다시 10월 8일에 제27연대가 공격하여 3차 점령하였으나 또다시 적의 역습으로 철수했다. 박동성 중위는 소대원을 지휘통제하며 양구 북쪽 적진에 침투하여 적 사단 지휘소를 습격 중 9월 20일 적 경계병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그는 전사 후 소위에서 중위로 추서되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성 중위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3-ㅋ-081)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