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성(박동성)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101729
  • 전몰일자 : 19501003

공훈사항

박동성 일병은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에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 등을 고려하여 작성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으로 철수만 거듭하던 1950년 7월 15일, 경북 대구의 제25교육연대로 입대하여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직할부대인 공병대대로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7연대를 직접 지원했다.
박동성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8월 초순, 제6사단은 육본 명령에 의거 8월 1일에 낙동강을 건너 8월 3일에 용기동∼307고지를 연하는 능선의 방어진지를 점령하여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다가 8월 12일 야간에 전면적인 철수를 단행해 위천 북쪽 1∼3㎞에 국통산∼324고지를 연결하는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사단 장병들은 8월 13일부터 시작된 북한군의 대규모 공격을 공세적인 방어로 격전 끝에 8월 28일까지 지키고, 이날 신녕 방면으로 철수하여 370고지군에 배치되었다. 박동성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철조망 및 지뢰지대 설치로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북한군은 9월 2일 오후 6시를 기해 대규모 공세(일명 북한군의 9월 공세)를 시작했다. 북한군은 격렬한 공격으로 일시적으로 영천, 경주, 포항을 점령했고, 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큰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다. 이후 제6사단은 9월 7일에 화산 주봉–725고지를 잇는 방어선에서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북한군은 큰 피해를 받고 9월 12일부터는 공세를 취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 부대와 보조를 맞추어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전 전선에서 일제히 반격을 개시했다. 제6사단도 지금까지 방어하던 정면의 적을 향해 반격을 개시하여 9월 18일에 조림산 일대의 북한군을 포위 섬멸하고자 했다. 당시 북한군도 방어태세를 강화하고 완강히 저항하였고, 또한 사단은 악천후로 인해 항공화력을 지원받지 못해 조림산을 탈취하지 못했다. 이어 사단은 9월 20일에 재공격을 하여 적의 가벼운 저항을 물리치고 9월 22일에 조림산 주봉을 탈취했다.
제6사단 장병들은 9월 23일부터 조림산에서 도망가는 북한군을 추격하여 의흥을 거쳐 9월 25일에 함창까지 추격했고, 이어 문경-충주를 거쳐 9월 30일에 원주를 탈환했다. 사단은 10월 2일에 횡성을 거쳐 홍천을 탈환했고, 10월 3일에 계속해서 춘천 방향으로 공격했다. 박동성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7연대 공격의 최선봉에서 장애물 개척 임무를 수행했다. 이날 그는 적이 설치한 지뢰지대를 개척하던 중 적 부대의 습격을 받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성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115-ㄴ-05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