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섭(朴東燮)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235259
  • 전몰일자 : 19521124

공훈사항

박동섭 일등중사는 1922년 11월 15일에 서울특별시 종로구 충신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한 1950년 12월 하순에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제32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동섭 일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951년 2월 초순, 제2사단은 안동 부근의 일월산과 보현산 일대에서 후방지역작전을 하고 있었다. 이후 ‘후방지역 안정화 작전임무를 완수하고, 4월 28일에 청평으로 이동하여 미 제9군단에 배속되었다. 이곳에서 제2사단은 5월 16일부터 중공군의 5월 공세로 전진을 멈추고 방어로 전환했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 북방-용문산-대관령-강릉을 잇는 선에서 저지하고 5월 20일을 기해 일제히 반격으로 전환했다.
박동섭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2사단은 청평-가평을 연결하는 도로를 따라 진격하여 6월 중순까지 육단리-적근산(1073고지)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이후 쌍방 간에 휴전협상이 논의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되었다. 이후 유엔군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공세적인 행동을 하기로 하고, 제2사단은 10월 14일부터 21일까지 김화-금성 진격전을 실시하여 522고지-477고지-하진현까지 점령했다.
이후 사단은 몇 번의 부대교대를 거쳐 1952년 6월 1일에 김화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40사단 진지를 인수하여 남대천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당시 공산군이 백마고지 등에 지속적으로 공격을 감행하자, 유엔군도 휴전협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공세적인 행동을 하기로 했다. 박동섭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2사단은 상급부대 작전지침에 따라 10월 14일에 김화 북쪽의 저격능선을 공격하기로 했다. 먼저 제17연대가 3차에 걸친 공격 끝에 저격능선을 탈취했다. 이후 제17연대와 제32연대는 교대로 저격능선을 방어했다. 중공군은 저격능선을 다시 뺏기 위해 수시로 공격했다. 그러던 중 10월 31일 야간에 저격능선을 탈취하기 위해 강력한 화력지원을 받으며 공격했다. 그가 소속된 대대는 즉각적인 반격으로 치열한 전투 끝에 저격능선을 사수했다.
이후 저격능선에서는 한동안 소강상태가 되었으나, 11월 초순에 중공군은 제29사단을 투입하며 공격준비를 강화했다. 그리고 11월 11일부터 대규모 부대를 투입하여 공격했다. 박동섭 일등중사는 11월 24일까지 계속된 전투에서 소대선임하사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섭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46묘역-11판-1100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1-ㅂ-04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