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섭(朴東燮)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211093
  • 전몰일자 : 19501009

공훈사항

박동섭 이병은 1922년 10월 26일 전라남도 강진군 옴천면에서 출생했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박 이병은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0년 9월 10일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에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이병이 연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북한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일진일퇴의 격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3사단은 형산강 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접전 중인 상황이었다. 이곳에서 연대는 9월 14일까지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한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에서 최후 위기를 극복하고 총반격 태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 전투에서 박 이병과 연대 장병들은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각오로 적과 싸웠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으로 전환했고, 제3사단은 9월 17일 형산강을 도하하여 반격을 개시했다. 이때 적 제5사단도 쉽게 물러나지 않고 강력하게 저항을 하면서 지연전을 전개했고, 아군은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물리치고 9월 22일 흥해까지 진격했다.
9월 23일 사단은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연대도 추격작전을 시작했다. 윤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계속 파죽지세로 나아가 장사동-평해-울진-삼척-강릉(30일)을 적의 큰 저항 없이 탈환하면서, 일일 평균 17.3km의 속도로 진격했다.
연대는 10월 2일 38도선을 돌파했고, 5일 치열한 격전 끝에 강력히 저항하는 적을 격멸하고 강원도 장전을 점령한 후, 6일 통천을 점령했다. 연대는 적의 가벼운 저항을 물리치고 계속 진격하여 고저를 점령하고 9일까지 남대천 일대에 도착하여 원산 공격 준비를 했다. 이 과정에서 박 이병은 선두에서 용감하게 진격하다 10월 9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섭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5판-8면-24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5-ㅋ-04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