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석(박동석)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11825
  • 전몰일자 : 19511213

공훈사항

박동석 하사는 1931년 3월 14일에 출생하였다(출생지 미상). 박 하사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박 하사는 1950년 12월경에 입대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제9사단은 1950년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경북 김천지구 및 왜관지구에 투입되어 공비들을 소탕한 후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점령했다. 이후 제9사단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 당시 1951년 1월 3일까지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이다 영월-삼척 선으로 철수하였다.
그 후 정선군 창리 일대에 배치되어 중공군의 공세를 격퇴하였다. 1951년 3월 5일에 제1군단에 배속 전환되어 북상하는 북한군 제10사단을 강원 정선군 송계리 일대에서 포위 격멸했다.
유엔군은 1951년 4월에 접어들어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하였다. 제9사단은 1951년 4월 25일에 제3군단에 배속되어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를 점령하였다.
중공군의 5월 공세 때 제9사단은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철수를 완료한 제9사단은 1951년 5월 29일부로 미 제1군단에 배속되어 포천으로 이동해 6월 3일부터 11일까지 중공군 제165사단과의 격전 끝에 고대산을 확보했다. 이어서 제9사단은 철의 삼각지 확보에 중요한 감제지형인 김화읍 계웅산 전투에 투입되었고, 치열한 공방전 끝에 6월 28일 동 고지를 점령했다.
부대 정비를 마친 제9사단은 1951년 10월 5일 다시 미 제1군단에 배속되어 철원 서북방의 요충지인 281고지(화살머리고지)와 395고지(백마고지) 일대에 배치되었다.
제9사단은 중공군 제126사단과 대치하다가 11월 3일부터 18일까지 실시된 395고지 전투에 투입되어 백병전을 전개하는 치열한 전투 끝에 고지를 확보하고 계속되는 적의 역습을 격퇴했다. 하지만 박 하사는 전투 중 적탄에 맞아 1951년 12월 13일에 안타깝게도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석 하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1-ㄱ-03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