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석(朴東錫)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143208
  • 전몰일자 : 19510303

공훈사항

박동석 이등중사는 경상남도 창원군 대삼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9월 5일 육군에 입대하였다. 그는 간단한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박동석 이등중사가 입대할 당시의 전황은 낙동강방어선에서 조국의 운명을 건 혈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박 이등중사는 단기간의 신병 교육을 수료하고 수도사단이 담당하고 있던 낙동강방어선의 안강 지구에 투입되었다. 낙동강방어선전투는 안강 일대에서 유격대로 증강된 북한군 2개 사단의 침공을 격퇴한 방어 전투였다. 방어전투라기보다는 핵심지역을 낮에는 국군이 점령하고 밤에는 북한군이 점령하는 공방전의 연속이었다. 계속되는 공방전에서 피아간 사상자가 크게 발생하였다.
박동석 이등중사가 소속된 사단은 국군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을 거둠에 따라 반격으로 전환하였다. 박 이등중사와 사단 장병들은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며 청송-평창-양양 방향으로 진격하였다. 전쟁 초기 기세등등했던 북한군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박 이등중사를 비롯한 장병 모두는 용기백배하여 9월 말 양양까지 진격하면서 38도선을 회복하였다. 이어 10월 1일 하조대 부근 38도선을 돌파해 북진작전에 돌입한 후 10월 10일에는 원산을 점령한 후 함경북도 길주까지 진격하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중공군의 개입과 기습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는 11월 말 길주에서 북한군이 반격해 오자, 12월 14일 함흥과 흥남으로 철수하던 중 벌어진 치열한 교전에서 북한군을 저지한 후 17일 흥남에서 묵호항으로 해상 철수하였다. 중공군의 제3차 공세를 맞아 1951년 1월 3일 양양 남쪽에 있는 원포리 일대에 진지를 점령한 후 북한군과 벌어진 치열한 교전에서 사력을 다해 싸웠다. 그는 강릉에 방어진지를 강화하면서 2월 25일부터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속사리 부근으로 투입되었다.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동석 이등중사는 1951년 3월 3일 하진부 부근 전투에서 야간 수색 정찰도중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석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02판-6면-16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4-ㄱ-06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