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복(朴東福)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2457
  • 전몰일자 : 19500710

공훈사항

박동복 일병은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7월 1일 육군에 입대하여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사단은 초기전투에서 많은 손실을 입고 부대의 재편과 보충을 통해 전쟁 전의 수준을 회복하였으나 대부분 신병이어서 전투력이 미약한 상태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박동복 일병 역시 간단한 소총 조작법만을 익힌 후 전선에 배치되었다.
박동복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진천 북단 백곡천에 투입되었다. 진천-청주 축선은 중서부 지역에서 대전 또는 보은 방향으로 이어지는 대단히 중요한 접근로이며, 이 축선에서의 작전은 서측의 경부축선상의 작전에도 큰 영향을 주는 중요 축선이었다. 그러나 7월 8일 아침 적 제2사단의 전차를 동반한 압도적인 공격을 받아 적을 저지하지 못하고 잣고개로 물러났으며, 이로써 진천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고 말았다. 이어 9일 아침 미처 부대정비와 진지편성을 마치기도 전에 또다시 적 제2사단 주력의 보·전·포 협동공격을 받게 되었다. 박 일병과 연대병력은 사력을 다해 방어하였으나, 결국 수차례의 교전 끝에 주저항선을 돌파당하였다.
박동복 일병과 연대병력은 7월 10일 청주의 미호천 남안으로 철수한 후 오근장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였다. 진지보강에 주력하고 있던 박 일병과 연대병력은 적의 선두부대가 접근하는 즉시 야포로써 제압하고 항공지원을 요청하여 적 집결지를 강타하는 등 적의 공격을 사전에 철저히 분쇄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박동복 일병은 1950년 7월 10일 청주 부근 전투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던 중 북한군의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복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2판-7면-01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02-ㄴ-03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