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문(朴東文)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K1128592
  • 전몰일자 : 19521107

공훈사항

박동문 하사는 1932년 12월 11일에 경상북도 대구시(現 대구광역시 중구) 덕산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작전을 한참 진행하던 1950년 10월 초순경 입대하여, 구포에 위치한 제3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카투사(KATUSA, 주한 미군에 파견된 한국군)병으로 차출되었다. 박동문 하사는 美 제25사단에 배치되어 적정탐색, 포로심문 등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부대조정에 의거 수도사단 제18연대로 재배치되었다.
박동문 하사가 연대에 재배치될 무렵 전황은 북진했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38도선으로 철수하여 방어 편성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북진작전에 참가했던 연대는 1950년 12월 10일 제3사단과 함께 흥남에서 해상 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고, 25일부로 제3사단으로 예속이 전환되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마침내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감행했고, 제18연대는 북한군 제2사단의 집중공격을 받고 평창으로 철수했다. 계속해서 제3사단은 평창, 횡성, 현리, 인제 일대를 오르내리며 1951년 5월까지 중공군 제3~5차 공세에 맞서 공방전을 펼쳤다. 그 후 제3사단은 5월 25일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양 일대에 배치되었다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구 동북방 가칠봉으로 이동하여 제5사단의 진지를 인수 후 1,211고지에서 적과 공방전을 펼쳤다.
1952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1월 12일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강원도 화천군 백석산 동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949고지-석장리 간의 제6사단 진지를 인수했다.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이 미 제9군단의 전선을 인수함에 따라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주 방어선을 계속 유지하면서 적과 소규모 진지전과 정찰전을 전개했다. 그러던 중 9월 28일 중공군 제203사단이 사단의 전초진지인 피의고지 및 독수리고지에 대규모 공격을 가해왔다. 이 고지에 배치된 제22연대가 고지를 탈취당하자 박동문 하사가 소속된 제18연대가 역습을 실시했고, 10월 2일까지 치열한 전투 끝에 이 고지들을 지켜냈다.
박동문 하사는 10월 1일경 분대원을 통제하며 독수리고지를 역습 중 교전하다가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서울특별시 삼청동에 위치한 제36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는 이 병원에서 정성스럽게 치료를 받았으나 11월 7일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문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8-ㅌ-016)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