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만(朴東萬)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7905084
  • 전몰일자 : 19510206

공훈사항

박동만 이병은 강원도 양구 남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박 이병은 1950년 12월경 입대하여 제8사단 제10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이병이 입대한 제8사단 제10연대 장병들은 1950년 12월 31일부터 북한군과 중공군의 제3차 공세에 직면해 있는 상태였다. 즉 제8사단의 정면으로 중공군 제66군 소속 제196·제197·제198사단이 진격해 온 것이다. 당시 제8사단 장병들은 혹한과 강설로 인해 안전한 진지 구축이 어려웠으나, 적의 주 접근로에 지뢰와 장애물을 설치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하였다. 또한 중공군의 끊임없는 공세에 1951년 1월경에는 신병이 대거 투입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박 이병이 소속된 제8사단 제10연대는 장병들의 분전과 신병의 대거 투입에도 불구하고 좌·우측 전선이 돌파됨에 따라 강원도 홍천군 방면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제8사단 제10연대 장병들은 목계리를 경유해 황강리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에 임하였다. 제10연대 장병들은 2월 강원도 횡성군에 주저항선을 설치하고 적의 공세에 대비해 방어진지를 철저히 구축했다.
중공군은 서부전선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병력을 가평 및 홍천 일대에 집결시켜 양평부터 횡성 일대에 공세를 계획하였다. 첫 번째 목표는 제8사단이 배치된 횡성이었다. 미 제10군단 또한 한강 남안에서 홍천까지의 경로를 확보하여 서울 재수복을 하기 위한 라운드업 작전을 계획하였다.
1951년 2월 5일부터는 횡성 부근에서 위력수색작전을 전개했으나 홍천군 삼마치고개 및 오음산 고지를 선점한 중공군 제198사단의 큰 저항이 있었다. 또한 국군은 5일간 보병, 기갑, 포병 등을 포함한 다양한 병과들이 제병협동작전을 실시하였으나 전선돌파에 실패했고, 이 과정에서 특히 제8사단의 피해가 컸다. 박 이병은 이러한 혼전 속, 1951년 2월 6일에 강원도 횡성군에서 적의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만 이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23묘역-3판-756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1-ㅊ-00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