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로(朴東魯)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70650
  • 전몰일자 : 19510212

공훈사항

박동로 하사는 1929년 5월 15일에 경상북도 영천군(現 영천시) 고경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있던 1950년 8월 하순경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통신대로 배치되었다.
박동로 하사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1950년 10월 8일 대구에서 재창설되어 10월 13일부터 11월 22일까지 영남 지역 후방지역작전에 투입되면서 적 게릴라들을 소탕했고, 이후 가평, 청평, 춘천 일대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완수했다.
북진을 계속하던 유엔군과 국군은 중공군의 두 차례에 걸친 기습공격에 의해 후방이 차단되어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고 있었다. 이에 사단은 12월 5일경에 전방지역으로 투입되어 17번 국도상의 춘천 지역에서 평양-춘천 간 도로의 동측방에 대한 철수 부대 엄호작전을 실시했다. 이후 사단은 12월 13일부터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의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어 방어편성을 했다.
사단은 1951년 1월 1일 새벽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받고 후방을 차단당하고, 1월 2일 밤에는 적들에게 포위되었다. 그러나 사단은 포위망을 돌파하여 가평을 거쳐 문막 동쪽으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하는 데 성공했다. 북한군 제10사단 병력들이 제천-단양-안동까지 후방 침투하여 위협하자 사단은 문막 일대에서 제천-영월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를 전환했다.
박동로 하사가 소속된 사단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저지한 다음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 공격을 개시했다. 2월 9일 사단은 적 주력이 4일 동안 완강하게 저항하던 방어거점인 317고지-412고지-247고지를 돌파하고 섬강 남쪽으로 진출하여 북한군 제6사단의 지휘소가 위치한 포동리를 점령했다. 이후 사단은 홍천 우측방의 목표 점령을 앞둔 2월 10일에 대규모 중공군의 기동을 확인하고 야간 방어로 전환했다. 마침내 2월 12일 아침 사단은 중공군의 2월 공세를 받고 방어진지에서 철수를 개시하여 제천 북쪽 강원도 영월군 주천리 일대 새로운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박동로 하사는 2월 12일 중공군의 2월 공세 시 횡성 일대에서 분대원과 함께 후발대로 유선 회수 중 적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로 하사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2-ㄹ-032)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