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기(朴東基)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1506638
  • 전몰일자 : 19510102

공훈사항

박동기 하사는 1926년 10월 20일 전라남도 순천군 영산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8월 7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박동기 하사는 전선에 투입되어 다부동-군위 일대에서 대구를 방어하고 있었다. 박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9월 28일 서울 수복작전에 기여하고 9월 말 38도선에 도달하였다. 이후 10월 9일에는 38도선을 돌파해 19일 평양에 선두로 입성하는 수훈을 세웠다. 박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10월 23~24일 안주 일대에서 청천강을 도하한 후 25일 운산에 도착하였다. 연대는 25일 오전 10시 30분에 운산에서 수풍호로 진출할 목적으로 군단에서 배속된 전차를 앞세우고 2개 연대 병진 대형으로 공세를 개시하였다.
청천강 남쪽의 신안주 부근에서 재정비를 완료한 박 하사와 연대병력은 11월 24일 북한군 병참선의 요충인 태천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북한군은 연대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하여 교량을 파괴시켰고, 도처에 120mm 박격포탄으로 만든 부비트랩을 매설하였다. 사단 공병이 이를 제거하는데 다소 시간이 지연되었으나 북한군의 저항이 경미하여 저녁 무렵에는 태천을 남쪽과 동쪽에서 포위하게 되었다.
박동기 하사와 연대병력은 12월 7일 사리원에서 남천으로 이동하여 구월산 일대에서 패잔병을 소탕하였다. 이후 위천리, 구화리 일대의 축차적인 지연 진지를 점령하여 아군의 철수를 엄호하면서 지역 내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하고 철수가 완료되자 14일에는 고량포-적성 일대에 배치되어 주저항선을 편성하였다. 이로써 6개월 만에 전쟁 개시 이전의 진지를 다시 점령하게 되었다. 연대는 방어진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지뢰와 철조망을 가설하는 동안 수색대를 강북으로 파견하여 적정을 탐지하는데 주력하였다.
박 하사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선두에 서서 용맹을 발휘하였다.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동기 하사는 1951년 1월 2일 안성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기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3599 육)을 추서하고 위패(29판-6면-26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3-ㅌ-01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