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근(박동근)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K1107976
  • 전몰일자 : 19510606

공훈사항

박동근 하사는 경상남도 창원군 진인면 시낙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27일,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로 선발되어 미 제8군으로 배치되었다가 육군의 병력배치조정에 의거 제6사단 수색대로 전속되었다.
박동근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0월 중순, 제6사단은 38도선을 돌파하여 10월 23일에 평북 희천까지 진격했다. 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압록강을 향한 두 차례에 걸친 총공세를 실시했으나, 그때마다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큰 피해를 받고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했다. 당시 사단은 전곡-동두천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그가 소속된 수색대는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정을 살펴 사단에 보고하고, 적 지휘소 및 보급소를 습격하여 후방교란활동을 실시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실시했다. 이에 제6사단은 중과부적으로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철수하여 2월 중순에 문막 북쪽의 판대리 일대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2월 12일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 시에 방어진지를 사수함으로써 돌파구 확장을 방지하여 반격의 여건을 조성했다. 사단은 3월 22일부터 북배산-수덕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4월 21일에 사창리까지 진출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로 후방이 차단되면서 큰 피해를 받고 철수하여 용문산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제6사단은 5월 20일부터 반격하여 5월 25일에 가평-춘천 사이의 계관산-북배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5월 28일에 구만리발전소-병풍산을 잇는 선을 확보하고, 6월 5일부터는 철의 삼각지대를 포함하는 철원-김화를 확보하기 위해 백암산에서 화천으로 뻗어 내린 643고지-887고지-992고지-취봉 방향으로 공격했다. 박동근 하사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6월 6일에 적진에서 정보수집 활동 중 적 부대에 발견되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으나, 그곳을 이탈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근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0판-6면-22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6-ㄴ-05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