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근(朴東根)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03075
  • 전몰일자 : 19501223

공훈사항

박동근 일병은 경상북도 금릉군 봉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박 일병은 1950년 9월 18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을 물리치고 반격작전 중이었고, 제7사단은 경주에 집결하여 반격작전 준비 중인 상황이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국군은 9월 22일부로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제8사단을 후속하여 경주-안동-문경-충주를 거쳐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했고, 김화-평강-율리를 거쳐 10월 18일 승호리 일대에서 대동강을 건너 김일성대학과 모란봉 일대로 진격했다. 연대는 20일 저항하는 북한군 제17, 제32사단의 잔적을 소탕하고 평양을 탈환했다. 이로써 연대 장병들은 제1사단과 더불어 최초로 평양을 점령한 부대원이 되는 영광을 안았다.
북진을 계속한 연대는 개천을 거쳐 11월 1일 군우리까지 진출하여 중공군 제38군과 맞닥뜨렸다. 사단은 11월 1일 공격을 개시했으나, 오히려 중공군의 역습에 밀려 후퇴하여 평안남도 개천 동북방의 비호산 일대로 후퇴했다. 11월 3일 연대는 중공군 제112사단의 공격을 받았고, 7일까지 적과 고지를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 끝에 비호산을 지켜냄으로써 청천강 교두보를 확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연대는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공세계획에 따라 11월 22일 묘향산을 공격했으나, 26일 그 남방에서 중공군 제38군과 제42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악전고투 끝에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이후 연대는 승호리-신계-시변리-연천-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12월 15일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이 무렵 중공군과 북한군은 제3차 공세(신정 공세)를 위해 정찰대를 파견하여 아군 진지에 대한 정찰을 강화했다. 박 일병은 진지공사 중에 12월 23일 적 정찰대와 조우했고, 즉각 앞장서서 공격해 나가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근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1-ㅂ-00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