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극(朴東極)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K1115024
  • 전몰일자 : 19501129

공훈사항

박동극 이병은 1929년 7월 20일에 강원도 춘성군 북신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로 선발되어 미 제7사단 제31연대로 배치되었다. 카투사는 당시 병력이 부족한 미군 사단에 한국군 병력을 보충하는 제도였다.
미 제7사단은 당시 일본 요코하마에서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박동극 이병은 8월 말에 부산에서 출항하여 일본에 위치한 미 제7사단에 합류하였다. 그는 미 제7사단 장병들과 함께 상륙작전을 위한 준비차 승선훈련과 시가지전투 훈련 등을 실시한 후 상륙함에 승선하여 인천으로 향했다. 드디어 9월 15일에 미 제1해병사단이 월미도-인천으로 상륙하여 상륙교두보를 확보하였다.
박동극 이병이 소속된 미 제7사단은 9월 18일에 미 제1해병사단을 후속하여 인천으로 상륙했다. 이후 지체 없이 김포비행장을 탈환하고 서울로 진격했다. 박동극 이병은 미군 장병들과 함께 인천 소사 남쪽의 동광산(221고지)-안양 북쪽의 300고지-관악산을 우회하여 과천-우면산 방향으로 진격하여 9월 23일에 신사리 일대에 도착했다. 그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25일에 서빙고로 한강을 도하 후에 남산을 탈환했다.
미 제7사단은 계속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원산상륙작전에 참가했다. 사단은 10월 6일부터 철로와 차량을 이용하여 부산으로 이동, 부산에서 10월 29일에 출항했다. 당시 국군 제3사단이 10월 10일에 이미 원산을 점령했기 때문에 미 제7사단은 11월 8일에 행정적으로 함경남도 이원으로 상륙했다. 미 제31연대는 11월 21일에 혜산진까지 진격했으나, 북한군 패잔병들의 지속적인 습격을 받았다.
이 시기에 중공군은 장진호로 진격하던 미 제1해병사단을 포위하여 공격했고, 잔여 북한군들은 아군이 배치되지 않은 원산을 점령했다. 이로써 미 제10군단은 후방이 차단되었다. 이에 유엔사는 철수명령을 하달했다. 박동극 일병이 소속된 제31연대는 아군의 후방을 차단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철수 준비를 했고, 11월 29일 야간에 철수하던 중 적의 공격으로 피해를 받았다. 이날 그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극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32면-17092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90-ㄷ-02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