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균(박동균)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15570
  • 전몰일자 : 19500703

공훈사항

박동균 중위는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분연히 일어섰다. 이 대위는 예비역이었으나, 1949년 11월 17일 예현 제2차로 현역 중위로 임관하여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동균 중위가 제1사단 사령부가 위치한 수색(현 서울시 은평구) 및 제1사단의 책임지역인 개성과 임진강 일대에서 38도선의 방어력 증강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던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였다. 박 중위가 소속된 사단은 임진강 도하 작전에 참전하였다. 북한군은 임진강을 도하 한 후 문산-서울 축선을 지향하고 있었다. 부대 장병들은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으나, 38도선 방어진지는 6월 25일 오전 중에 무너져 버렸다.
박동균 중위의 진두지휘하에 장병들은 소규모로 분산된 채 파평산 방향으로 철수하면서 저항을 계속하였다. 이어 26일에는 파평산 방어진지의 노출된 동측방으로 접근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해 주저항선이 무너졌다. 이후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 제1사단의 주공이 320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진출하면서 문산리를 위협하였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 속에서 연대병력은 27일 야음을 이용하여 봉일천 북쪽 위전리-도내리를 연하는 최후저지선까지 결전을 펼치면서 철수하였다. 29일 북한군의 주력이 전방 주저항선을 돌파하고 문산-의정부 선까지 진출하자 박 중위와 연대 장병들은 봉일천과 창동선에 급편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서울 방어를 위한 최후의 저항을 준비하였다.
적의 도하 공격 나흘째인 7월 3일 미명부터 국군의 방어선이 적의 주공에 의해 돌파되면서 전황은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노량진 방면으로 도하 한 적 제3사단의 일부 병력이 영등포의 배후를 위협하고 동시에 적 제6사단 제14연대의 일부 병력이 오류동을 돌파하여 전차 2대의 엄호하에 영등포로 진출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장병들에게 솔선수범하는 훌륭한 소대장이었다. 전투 경험이 없는 장병들을 지휘해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을 방어했던 박동균 중위는 1950년 7월 3일 영등포 부근 전투에서 적이 쏜 탄환을 맞고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균 중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110-ㅍ-02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