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간(朴東肝)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10925

공훈사항

박동간 순경은 1922년 9월 28일 전남 광산군 임곡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남도경 광산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지리산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고 군경부대가 남쪽으로 후퇴함에 따라 광산경찰은 장성-광산, 광산-함평, 광산-나주, 광산-광주를 잇는 주요 도로 통제, 주요 시설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한강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자 전남경찰국은 각 서(署)에서 일부 병력을 차출하여 전북경찰국에 배속하고, 나머지 병력으로 전투부대를 편성했고, 광산경찰서 병력도 전투경찰로 재편되었다.
7월 23일 북한군이 전차 6대와 트럭을 이용하여 정읍을 거쳐 광주로 진격하자 광산경찰을 포함한 전남경찰은 화순-벌교를 거쳐 순천으로 철수했다. 광주에는 북한군 500-600명이 야포 3문과 함께 진입했으며, 1개 연대규모의 병력이 뒤따르고 있었다. 전남 서남부지역 경찰은 화순 남쪽 산악지대에 저지진지를 구축하고 접근로를 파괴하는 등 적의 공격에 대한 거부작전을 실시했다.
광산경찰은 하동을 거쳐 마산으로 이동하기 위해 7월 23일 이동을 개시했으나 일부 적이 구례를 거쳐 하동으로 진격하는 바람에 하동의 퇴로가 막혔다. 이에 전남경찰병력(200명)은 순천에서 여수로 기동하여 선박 편으로 7월 26일 삼천포에 도착, 곧바로 하동지역으로 기동했다. 그 후 경남·전남 경찰병력은 7월 31일 함안-마산으로 철수하여 낙동강 방어작전에 참여했다.
인천상륙작전과 국군·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광산경찰은 10월 초 광산경찰서를 수복하고 지역 내 치안유지와 잔적소탕작전을 전개했다. 국군·유엔군의 총반격으로 퇴로가 차단된 북한군은 가까운 산지로 들어가 공비들과 합류하여 게릴라 활동을 전개했다. 이에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공비섬멸 작전기간(1차: 1951.3.10-4.10, 2차: 1951.4.15-5.5, 3차: 1951.7.15.-8.15)을 설정하여 전국적으로 공비섬멸을 하도록 했다. 박 순경은 제1-제3차 공비섬멸작전에 참가하여 공비섬멸에 크게 기여하였다. 박 순경은 며칠 후 9월 25일 지리산에 출동하여 공비를 소탕하다가 공비가 쏜 총탄에 의해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간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00-ㄴ-00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