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돌복(朴乭福)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9923
  • 전몰일자 : 19500805

공훈사항

박돌복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대명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50년 초에 수도사단으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소총병으로 배치되었다. 당시 수도사단은 1949년 6월 20일에 서울 용산에서 창설되었고, 경비임무를 수행하면서 유사시 전방지역으로 투입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에 기습적으로 침략하자, 박돌복 일병이 소속된 수도사단은 제7사단이 담당하고 있던 동두천 축선으로 증원되었다. 북한군은 동두천 축선에 제4사단과 40여 대의 T-34 전차를 투입해 공세를 감행하고 있었다. 박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의정부를 거쳐 창동 방어선으로 철수하면서 전투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공격으로 인해 국군의 방어선은 오랫동안 지탱되지 못하고 붕괴되었다.
박돌복 일병과 장병들은 주저항선인 동두천 북쪽 소요산 일대의 진지로 철수하여 남하하는 북한군과 일진일퇴의 치열한 전투를 계속하면서 진지를 사수했다. 그가 소속된 연대는 북한군의 보전협동부대를 저지하였으나 서측으로 우회한 북한군의 위협을 받아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수도사단은 탄약을 재보급 받지 못한 상황에서 북한군 제107전차연대 소속의 전차 수십 대를 앞세운 북한군의 총공격을 받아 소요산 일대의 주저항선이 돌파되기 시작하였고, 10시간에 걸친 혈전에도 불구하고 동두천 방면으로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군은 6월 27일 저녁 미아리 방어선을 돌파하고, 6월 28일 새벽 서울에 진입하였다. 박돌복 일병과 장병들은 소부대 단위로 분산된 채 삼송리를 거쳐 행주로 철수해 한강을 도하하였다. 박 일병과 연대병력은 오류동 일대에서 북한군을 저지한 후 7월 3일 한강방어선이 무너지자 지연전 및 재편성을 병행하며 시흥지구에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사단은 평택-진천-청주-보은-안동으로 철수한 후 8월 1일 야음을 이용하여 낙동강 남안으로 이동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선두에 서서 용맹을 발휘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돌복 일병은 1950년 8월 5일 낙동강방어선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돌복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2-ㄴ-06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