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도제(박도제)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72812
  • 전몰일자 : 19520515

공훈사항

박도제 일병은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을 준비 중이던 1950년 9월 중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도제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압록강 및 두만강으로 진격작전을 진행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제6사단은 38도선을 돌파하고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압록강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으로부터 기습적인 공격을 두 차례 받고,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여 전곡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1951년에 접어들면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 2월 공세, 4월 공세, 5월 공세가 있을 때마다 사단 장병들은 이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여 6월 중순경에 김화 북방의 봉화산(477고지)-교암산(770고지)을 연하여 주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얼마 후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하자, 유엔군사령부는 휴전협상을 촉진하고 중공군의 공세역량을 제거하기 위해 전방지역에 대해 공세적인 작전을 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에 사단은 전방의 금성천 분지를 탈취하기 위해 10월 13일부터 공격했다.
먼저 제7, 19연대가 공격했고, 박도제 일병이 소속된 제2연대는 사단 예비로서 전방연대를 후속하다가 10월 16일에 초월공격하여 중공군을 격파하고 10월 21일에 최종목표인 교암산(770고지)을 탈취했다. 이후 제2연대는 10월 30일에 교암산 방어지역을 미 제24사단에 인계하고 다시 사단 예비가 되었다.
사단은 1952년 1월 10일에 미 제9군단에서 배속 해제되어 양구 일대로 이동하여 교육훈련에 집중했다. 이후 3월 22일에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부근의 거리실, 원남 일대로 이동하여 美 제40사단으로부터 방어진지 일부인 봉화산(477고지)-교암산(770고지)을 잇는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그리고 사단은 3월 29일부로 미 제9군단에서 백야전투사령부(4월 5일부로 제2군단으로 개칭)로 배속이 변경되었다.
이후 사단은 봉화산-442고지 일대의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수색정찰 및 매복 작전에 전념했다. 박도제 일병은 4월 하순경 매복 작전을 나갔다가 후방지역으로 침투한 적 침투부대와 조우하여 교전 중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춘천에 위치한 제2이동외과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 병원에서 정성스런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5월 15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도제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26-ㅇ-105)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