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도식(朴道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355268
  • 전몰일자 : 19510828

공훈사항

박도식 이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대신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3월 초순경 육군에 입대하여 육군직할 제1병기단에 배치되었다.
육군본부는 병기부대를 확충하여 1948년 9월 1일 육군 병기단을 창설했다. 이때 병기단은 제1·2병기대대 본부와 제1병기정비중대, 제1병기탄약중대, 병기중정비중대, 병기경정비중대, 병기창고중대 등으로 편성되었다. 하지만 병기의 대부분을 미군 군원에 의존하고 있었고, 보급·정비 능력은 극히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그러다 1948년 10월 5일 경기도 부평에서 육군특별부대병기단 관할로 육군자동차학교(병기학교 전신)가 창설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일선 부대에서 가장 긴급하게 요구되었던 것이 병기와 탄약이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으로 전환하여 진격함에 따라 병기단은 장거리를 이동하면서 전방부대들을 밀접히 지원했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쟁이 장기화되자 병기단은 1951년 4월 제30병기대대를, 6월 제60병기대대를 창설하여 능력을 보강했다.
1951년 7월부터 휴전회담이 추진되고 전선은 안정되어 갔지만 후방교란을 위한 적 게릴라들이 습격, 파괴활동은 더욱 심해졌고, 병기단도 이들의 기습을 자주 받았다. 박도식 이병은 병기단 대원으로서 앞장서서 전방 부대들에 대한 병기 정비와 보급에 진력함으로써 전투부대들의 전투력 유지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앞장서서 솔선수범하였다. 유사시에는 전투에 참여하여 용맹을 발휘하였다. 박도식 이병은 1951년 8월 28일 전방부대의 병기정비 지원을 위해 이동하던 중에 적의 기습사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도식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31묘역-판-2534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86-ㄷ-07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