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도봉(박도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6261
  • 전몰일자 : 19500821

공훈사항

박도봉 일병은 경상북도 달성군 유가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으로 철수를 거듭하고 있을 때인 1950년 7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소총 조작법만을 익힌 후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
박도봉 일병이 소속된 제1사단은 7월 13일 미원 북방에서 방어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북한군 제15사단이 괴산에서 부대정비를 마치고 16일 미명 미원 북방으로 공격을 개시하여 부흥리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박 일병과 연대 장병들이 한때 위기를 맞이하였으나 북한군의 진출을 더이상 허용하지 않고 저지하였으며, 다음날에도 전차 3대와 장갑차 12대로 전력을 증강하여 공격을 재개한 북한군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북한군 제2군단의 집요한 공격에 밀려 박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다시 미원 남쪽으로 진지를 전환하였다. 이어 7월 21일 전선 정리계획에 따라 춘양으로 진출하려던 중 화령장의 상황이 확대되자 보은에서 화령장으로 투입되어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박도봉 일병이 소속된 제1사단은 24일까지 적을 저지하다가 상주 북쪽에서 미 제25사단 제24연대가 화령장에 도착하자 다음날 작전지역을 인계하고 상주로 이동하였다. 이후 제1사단은 군단 재편성에 따라 제2군단으로 전환되어 함창으로 전진하였다.
함창에서 북한군을 저지하고 있던 박도봉 일병과 장병들은 8월 1일 야음을 이용하여 낙정리로 이동, 왜관에서 낙정리까지 도상거리로 42km 정면을 담당하는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다음날(2일) 제12연대의 엄호 아래 나루터에서 선박으로 낙동강을 도하 하여 3일 저녁까지 신진지의 점령을 완료하였다. 주 접근로를 담당한 박 일병과 사단 병력은 낙정리 부근으로 도하 하는 적 제13사단을 몇 차례 격퇴시켰으나, 적의 도하가 본격화되자 방어 정면이 너무 넓은 데다가 북쪽이 돌출되어 있어 방어선의 유지가 어려워졌다. 박 일병과 장병들은 5일부터 적 제13사단 주력의 총공격을 받기 시작하여 낙산동 일대의 고지가 일시 피탈되었으나 과감한 역습을 전개함으로써 적을 격퇴하였다. 이후 사단은 11일부로 다부동-군위 일대에서 대구를 방어하게 되었다.
박 일병은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오직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켜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용맹을 발휘했다. 최후까지 용감히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하던 박도봉 일병은 1950년 8월 21일 다부동 전투에서 푸른 청춘의 꿈을 남겨둔 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도봉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110-ㄲ-05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